[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실망·허탈…"정부가 책임져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 헌법재판소의 수도 이전 위헌 결정이 내려진 21일 오후 수도 이전 예정지인 충남 연기군 남면 양화리 주민들이 마을 어귀에 모여 침통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

충청 주민과 지자체.시민사회단체 등은 대부분 허탈감에 빠진 표정이었다.

주민들은 "당연히 기각될 것으로 알았는데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충청권 지방자치단체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새 수도 후보지인 공주시 장기면 일대 주민들은 큰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장기면 하봉리 윤승현 이장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수도 이전 후보지로 거론했다가 무산됐던 기억이 생생한데 다시 같은 일이 되풀이됐다"고 망연자실해 했다.

연기군 조치원읍 최미라(41.여)씨는 "주민들을 무시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로 허탈감과 분노를 느낀다"면서 "그동안 논란도 있었지만 주민 모두 큰 기대감이 있었는데 허탈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연기군 남면 한문수 면장은 "허탈감에 빠진 민심을 수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연기군 금남면 박진찬씨는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 중단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기면 산학리 박항기(50)씨는 "수도 이전 재추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여는 등 강력 대응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승윤(45.회사원.대전시 유성구 노은동)씨는 "수도 이전 계획으로 앞으로 충청권이 많이 발전할 것 같아 올해 초 직장을 서울에서 대전으로 옮겼는데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충청지역 지자체와 시민사회단체들도 헌재의 결정에 불만을 나타냈다.

행정수도이전 범국민연대(공동대표 이창기 대전대 교수)는 이날 성명을 내고 "법치국가에서 합법적으로 탄생된 법안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은 앞으로 정부가 수행하는 각종 정책에 대해 정당성 시비를 불러오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신행정수도건설 충북연대 이도영(70) 상임대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해 충격적이다.

그러나 행정수도 이전은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공약사항이므로 정부는 책임을 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방분권국민운동 충북본부 송재봉(38) 공동집행위원장은 "헌재가 법리적 해석보다는 정치적 판단으로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수도권 집중 때문에 피해를 본 비수도권 지역 주민들을 대신해 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원대 이헌석(43.법학) 교수는 "청구인들이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각하됐어야 한다"고 주장한 뒤 "법리적 판단을 우선하지 않고 정치적 고려와 주관적 감정이 개입된 결정을 한 헌재의 존재 의의에 의구심이 든다"고 비난했다.

김필중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 대전사무소장은 "허탈하다. 앞으로 참여정부의 정책 추진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기봉 연기군수는 "행정수도 건설 사업이 이미 상당히 진척됐고, 군민 대부분이 기대했었는 데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오영희 공주시장은 "비록 위헌 결정이 내려졌지만 정부와 국민이 지혜와 힘을 모아 행정수도 건설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수도이전을 반대해 온 부안 임씨 종친회와 무주택자 등 일부 주민들은 이번 헌재의 결정에 안도했다.

부안 임씨 대종회 총무 임헌인(62.연기군 남면 종촌리)씨는 "고향을 지키게 돼 다행"이라며 헌재 결정을 적극 환영했다. 임씨는 연기군 남면 면사무소에서 결정 장면을 지켜보다 위헌결정을 내리자 "만세"삼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희원(37.회사원.대전시 동구 판암동)씨는 "그동안 아파트 전셋값이 너무 올라 걱정이 많았는데 집값이 내릴 것 같아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최준호.안남영.김방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