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수가 맡은 역할은 모델러(modeler). 감독이 원하는 CG 이미지의 기본적인 윤곽을 만들어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컴퓨터 상의 조각가”다. 24일 서울 삼성동에서 열린 한국콘텐츠진흥원(원장 이재웅)의 세미나 ‘아바타를 통해 본 CG 기술의 현재와 미래’에서 강연한 그를 만났다. 이 교수는 피터 잭슨의 ‘킹콩’(2005년), 로버트 저메키스의 ‘베오울프’(2007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틴틴의 모험’(2011년 개봉 예정) 등의 CG 작업에도 참여했다.
‘아바타’ CG 작업에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야심을 품은 건 두 가지였다고 한다. “하나는 아바타 캐릭터의 얼굴 표정을 어떻게 실제 배우가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표현할 것인가 였고, 다른 하나는 기존에 없던 웅장한 신세계 ‘판도라’를 어떻게 창조해낼 것인가 였습니다.” 이 교수가 참여한 작업은 후자였다.
“처음엔 막막하고 두려웠어요. 판도라 행성을 이루고 있는 동물과 식물, 곤충과 돌·바위 등 모든 요소를 새로 만들어내야 했으니까요. 데이터 용량도 일반 영화의 40∼50배였기 때문에 자주 에러가 났어요. 작업 과정은 ‘에러와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판도라의 아이디어는 캐머런 감독이 꿈에서 본 풍경에서 나왔다. “중국 후난성에 있다는 산의 사진을 주면서 ‘이런 느낌으로 ‘할렐루야산’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하더군요. 허공에 떠 있는 돌도 하나하나 다 다르게 만들어야 했어요. 실제 풀과 돌을 촬영해서 쓴 건 거의 없고, 대부분 100% 저희들 손에서 탄생했어요.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 거죠.” 돌산을 둘러싸고 있는 평균 400개의 덩굴을 만드는 일은 한마디로 ‘막노동’이었다.
“바위마다 붙은 덩굴의 숫자도 다르고 방향도 다 제각기였어요. 돌은 클로즈업이 될 경우 풍화작용을 거친 흔적까지 보여질 수 있으니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죠. 나중엔 각기 다른 돌산의 모양을 생각해내는 것도 한계가 느껴지더군요.”
‘아바타’에 등장한 할렐루야산. 판도라 행성에 떠다니는 거대한 산이다. 이선진 동서대 교수를 비롯한 뉴질랜드 웨타 스튜디오 소속 한국인 CG 전문가들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20세기폭스 제공]
미래 영상콘텐트산업의 핵심기술이 될 CG와 관련, 한국영화가 ‘아바타’에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 그는 “‘아바타’는 한 비범한 감독의 열정과 집념이 제대로 된 시스템과 만나 가능했다”고 말했다.
“캐머런 감독은 ‘터미네이터2’ ‘어비스’ ‘타이타닉’을 거치면서 20년 가까이 CG에 관한 노하우와 아이디어를 쌓아온 사람입니다. 하루 이틀에 이뤄진 게 아니죠. ‘아바타’ 같은 작품이 한국에서도 나오려면 초기 투자비용이 들더라도 시스템을 먼저 마련해야 합니다.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요. 그러려면 CG에 할애하는 제작비 비중부터 높여야겠죠. CG업체에 세금 감면과 시설 제공 등 각종 혜택을 주는 뉴질랜드처럼 정부 지원도 뒤따라야 할 겁니다.”
기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