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혁명아바타CG 작업한 이선진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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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영화 ‘아바타’가 역대 국내 박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예상된다. 종전 1위였던 ‘괴물’(1301만 명)을 넘어설 게 확실하다.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한국인 컴퓨터그래픽(CG) 전문가 9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아바타’ CG의 70% 이상을 담당한 뉴질랜드 웨타 스튜디오 직원들이다. 그 중 한 명이 이선진(38·사진) 동서대 교수(멀티콘텐츠학부)다. 잘 알려진 대로 웨타 스튜디오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빚어낸 곳이다.

이 교수가 맡은 역할은 모델러(modeler). 감독이 원하는 CG 이미지의 기본적인 윤곽을 만들어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컴퓨터 상의 조각가”다. 24일 서울 삼성동에서 열린 한국콘텐츠진흥원(원장 이재웅)의 세미나 ‘아바타를 통해 본 CG 기술의 현재와 미래’에서 강연한 그를 만났다. 이 교수는 피터 잭슨의 ‘킹콩’(2005년), 로버트 저메키스의 ‘베오울프’(2007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틴틴의 모험’(2011년 개봉 예정) 등의 CG 작업에도 참여했다.

‘아바타’ CG 작업에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야심을 품은 건 두 가지였다고 한다. “하나는 아바타 캐릭터의 얼굴 표정을 어떻게 실제 배우가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표현할 것인가 였고, 다른 하나는 기존에 없던 웅장한 신세계 ‘판도라’를 어떻게 창조해낼 것인가 였습니다.” 이 교수가 참여한 작업은 후자였다.

“처음엔 막막하고 두려웠어요. 판도라 행성을 이루고 있는 동물과 식물, 곤충과 돌·바위 등 모든 요소를 새로 만들어내야 했으니까요. 데이터 용량도 일반 영화의 40∼50배였기 때문에 자주 에러가 났어요. 작업 과정은 ‘에러와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판도라의 아이디어는 캐머런 감독이 꿈에서 본 풍경에서 나왔다. “중국 후난성에 있다는 산의 사진을 주면서 ‘이런 느낌으로 ‘할렐루야산’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하더군요. 허공에 떠 있는 돌도 하나하나 다 다르게 만들어야 했어요. 실제 풀과 돌을 촬영해서 쓴 건 거의 없고, 대부분 100% 저희들 손에서 탄생했어요.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 거죠.” 돌산을 둘러싸고 있는 평균 400개의 덩굴을 만드는 일은 한마디로 ‘막노동’이었다.

“바위마다 붙은 덩굴의 숫자도 다르고 방향도 다 제각기였어요. 돌은 클로즈업이 될 경우 풍화작용을 거친 흔적까지 보여질 수 있으니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죠. 나중엔 각기 다른 돌산의 모양을 생각해내는 것도 한계가 느껴지더군요.”

‘아바타’에 등장한 할렐루야산. 판도라 행성에 떠다니는 거대한 산이다. 이선진 동서대 교수를 비롯한 뉴질랜드 웨타 스튜디오 소속 한국인 CG 전문가들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20세기폭스 제공]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섬세함은 이번에도 발휘됐다. “한국인들은 손놀림이 정교해요. 게다가 일을 시작하면 밤샘도 꺼리지 않고 빠른 시간 내에 해내죠. 이번에도 주당 80시간씩 일하는 저희들을 보고 회사에서 ‘역시 코리언 파워’라며 놀라더군요.”

미래 영상콘텐트산업의 핵심기술이 될 CG와 관련, 한국영화가 ‘아바타’에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 그는 “‘아바타’는 한 비범한 감독의 열정과 집념이 제대로 된 시스템과 만나 가능했다”고 말했다.

“캐머런 감독은 ‘터미네이터2’ ‘어비스’ ‘타이타닉’을 거치면서 20년 가까이 CG에 관한 노하우와 아이디어를 쌓아온 사람입니다. 하루 이틀에 이뤄진 게 아니죠. ‘아바타’ 같은 작품이 한국에서도 나오려면 초기 투자비용이 들더라도 시스템을 먼저 마련해야 합니다.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요. 그러려면 CG에 할애하는 제작비 비중부터 높여야겠죠. CG업체에 세금 감면과 시설 제공 등 각종 혜택을 주는 뉴질랜드처럼 정부 지원도 뒤따라야 할 겁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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