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엔진 달고 달리는 4륜구동 스바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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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이치카와 가즈하루 엔진총괄 부장

사륜구동의 명가로 불리는 일본 스바루 자동차가 4월부터 한국 판매를 시작한다. 스바루는 포르셰와 함께 수평대항(Horizontally-Opposed) 엔진을 쓰는 자동차 회사로 유명하다. 이 엔진의 이름은 직렬이나 V형 엔진과 달리 피스톤이 좌우로 마주보면서 수평하게 움직여 붙여졌다. 권투선수가 주먹을 내미는 형태가 피스톤의 움직임과 비슷하다고 해 ‘복서(Boxer) 엔진’으로도 불린다.

20일 경기도 이천시 지산리조트에서 열린 스바루 시승회에 참가하기 위해 내한한 이치카와 가즈하루(市川和治·51) 엔진총괄 부장은 “수평대항 엔진은 진동이 적고 부드러운 가속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각 피스톤이 움직이면서 생기는 관성이 맞은편 피스톤에 의해 상쇄되기 때문에 진동이 적을 뿐 아니라 높은 엔진 회전수(6000rpm 이상)까지 부드럽게 회전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차체를 설계할 때 엔진의 무게 중심이 낮아져 다이내믹한 주행을 가능하게 하는 장점도 있다고 한다.

스바루는 국내에 세단인 레거시(2.5L와 3.6L·사진), 포레스터(2.5L), 아웃백(2.5L와 3.5L) 세 모델을 내놓는다. 모든 차량에 수평대항 엔진이 달렸고 사륜구동 방식이다. 이치카와 부장은 “수평대항 엔진은 스바루만의 특징인 사륜구동 설계를 손쉽게 해줄 뿐만 아니라, 연비도 전륜 또는 후륜 구동 차량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등 장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사륜구동인 포레스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경우 2.5L 가솔린 엔진에 4단 자동변속기를 달고도 공인 연비가 10㎞/L 이상 나온다. 스바루는 디젤 엔진도 수평대항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엔진오일 교환 등 유지보수나 내구성은 일반 엔진과 똑같다.

이처럼 수평대항 엔진은 장점이 많지만 엔진오일 누출 방지가 어렵다는 점 등 기술적인 이유로 극소수 자동차 회사가 제작할 뿐이다. 스바루처럼 비행기 엔진 제조로 출발한 BMW는 모터사이클에 이 엔진을 쓴다. 스바루는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하는 7개 일본 자동차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판매가 증가했다. 도요타·혼다와 비교하면 비슷한 가격대이지만 내구성과 안전성이 입증돼 불황기에 소비자의 선택이 늘었다는 게 스바루의 설명이다. 차축이 전륜부터 후륜까지 연결된 사륜구동 차체 구조는 충돌 안전성이 뛰어나 미국의 신차 평가 프로그램에서 모든 차종이 최고 등급인 ‘별 다섯 개’를 받았다.

스바루의 모회사인 후지중공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제로센’의 엔진을 만들었다. 이 전투기 엔진이 바로 수평대항 엔진이다. 국내 판매 가격은 3000만원대 중반부터 4000만원대 후반까지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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