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여인 사단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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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류짜이푸(劉再復) 전 중국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장은 중국 문학평론계의 태두다. 그가 최근 홍콩 명보(明報)에 ‘여인 사단론(四段論)’이란 평론을 기고했다. 여인은 남자·자녀·자기 자신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에게 버림받는다는, 지독한 내용이다. 남자 부분만 보자.

"여인이 남자를 끄는 기본은 미모다. ‘한눈에 반하기(一見鍾情)’에서 ‘반하기(鍾情)’는 미모지, 내부의 광휘는 아니다. 하지만 자녀를 생산하면 여인은 미모를 잃는다. 조설근(曹雪芹)은 사랑하는 여인이 시집가는 꼴을 참지 못했다. 임대옥(林黛玉), 청문(晴雯), 우삼저(尤三姐), 원앙(鴛鴦) 등 홍루몽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처녀로 죽는다. 미모를 지키고 싶다는 작가의 꿈이다. 톨스토이도 피예르에게 시집간 나타샤를 뚱보 주부로 만들고 말았다. 심술이다. 남자에게 20~30대 여인은 ‘마음속 사람’, 30~40대 여인은 ‘집안 속 사람’, 40~50대 여인은 ‘문밖의 사람’, 그리고 50~60대 여인은 ‘쓸모 없는 사람’이다.”

내용은 신랄하지만 결론은 따뜻하다. 스스로를 버리지 말고, 자강불식(自强不息)한다면 사단론의 숙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끝맺는다. 이 말을 들은 것일까. 지금 중국은 여인 바람이 거세다. 이른바 ‘신(新)사단론’이다. 즉, 무지소녀(無知少女)다. ‘무’는 당적 없음이다. 류훙(劉蕻) 문학원 부교수가 대표다. ‘지’는 지식분자다. 천주(陳竺) 위생부장(장관)이 선두주자다. ‘소’는 소수민족이다. 지난달 외교부 부부장으로 발탁된 푸잉(傅瑩)이 발군이다. 그는 몽골족이다. ‘녀’는 이들 모두가 여성이라는 뜻이다. 신사단론의 메시지는 간단치 않다. 모두 ‘역경을 이겨낸 승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무, 지, 소, 녀는 인민무산계급 독재가 아직도 도그마인 중국 정계에서는 모두 마이너스 요소다. 중국 언론들이 이들의 약진을 굴기(崛起·우뚝 섬)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우리도 여풍(女風)이 만만찮다. 23일 임관된 신임 법관 89명 가운데 71%인 63명이 여성이라는 건 이제 뉴스거리조차 못 된다. 빙판 위의 ‘육상 100m’라는 올림픽 500m에서 아시아 최초로 금메달을 거머쥔 이상화(花)는 어떤가. 그는 이미 우리 마음속 영원한 꽃이 됐다. 그뿐인가. 어제 피겨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역대 최고점을 기록한 김연아는 이미 국가급 브랜드다. 그렇다면 여성 파워에선 우리가 중국보다 한 수 위다. 국민의 행복과 꿈을 몇 배나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진세근 탐사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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