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약업계 삼각 비리 끊자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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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의약분업 시행 6개월을 맞았으나 의사들의 리베이트(의약품 채택비) 수수 등 의.약계의 고질적 비리가 근절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혐의를 포착한 의사들만도 1천여명이며 수수액도 2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또 본지 취재팀의 취재 결과 일부 의원에서 진료도 하지 않은 채 처방전을 발급하는가 하면 어떤 약국은 처방전 없이도 당뇨병.고혈압 약 등 전문약품을 파는 것으로 확인돼 의약분업 자체를 무색케 하고 있다. 심지어 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처방전을 만들어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리베이트나 랜딩비 등의 수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난해 7월 의약분업이 시행된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으며 수법이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의약분업 시행의 기본 취지는 의약품 오.남용과 약화(藥禍)를 막자는 것이지만 의.약계의 비리를 끊자는 뜻도 담겨 있다고 봐야 옳다.

그럼에도 제약사가 처방을 대가로 10~40%의 리베이트를 병.의원에 제공하는 사례가 여전하고 최근 들어 병.의원, 약국, 제약사의 삼각 불법거래를 알선하는 신종 브로커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이미 사망한 사람 이름으로 서류를 꾸며 의료보험료를 빼먹은 경우도 있었다는 대목에선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이에 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감시.감독체계는 지극히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의약분업의 조기 정착을 위해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1백명의 '의약분업 감시단' 을 발족시켰다.

그러나 이 인력으로 2만곳 가까운 병.의원과 1만6천여 약국을 감시하기란 불가능하다. 정부는 의약품 유통비리를 뿌리뽑기 위해 오는 5월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병.의원이나 의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제약사에 약제비를 지급토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의약품의 무자료 거래 등을 어느정도 막을 수는 있겠지만 의약품 채택과정에서 건네지는 리베이트 비리 근절책과는 거리가 있다.

때문에 제약사에서 생산돼 환자에게 투여될 때까지 모든 의약품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일정기간 의약분업 감시단 인원을 늘리는 한편 세무관리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게 리베이트 수수 등을 거부하는 의.약계 종사자들의 자정 노력이다.

'가재는 게편' 식으로 상대방 비리를 감싸주다간 비리의 고리를 끊어낼 수 없다. 우리는 최근 일부지역 의사들이 공개적으로 리베이트 거부운동에 나선 사실을 주목한다. 직업의식과 양심에 바탕을 둔 의.약계 내부의 동료감시(peer review)가 기대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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