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영웅 ‘비실이 선생님’ 사랑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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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늘 아침. 선생님!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멍하고, 가슴이 텅 빈듯하고, 눈물이 핑 돌다가,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어릴 적 나의 영웅! 코미디언 꿈을 꾸게 해주신 선생님. 흑백 텔레비전도 귀하던 그 시절, 선생님이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와 개다리 춤을 추면 우리 동네 모든 분들이 마을 앞 넓은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배꼽을 잡았더랬습니다. 그때 저는 코미디언이 되고야 말겠다고 마음먹었었죠.

1980년대, 선생님과 함께 한 무대에서 코미디를 하게 됐을 때 저는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안개가 자욱한 아침 길을 헤치고 선생님을 뵐 수 없는 선생님께로 달려갑니다. 하필, 오늘, 봄이 가까이 왔습니다. 이 봄을 보지 못하고, 당신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 당신의 그 비실비실 걸음걸이가, 그러다가 넘어지던 그 연기가, 얼마나 어려운 연기였던가를. 언젠가 저는 선생님의 그 넘어지는 연기를 흉내내본 적이 있습니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제 발로 제 발을 걸고 넘어지는 그 연기는 정말 어려운 연기였습니다.

삶이 팍팍했던 그 시절, 비실비실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우리 모두에게 웃음을 주었던 당신은, 저만의 영웅이 아니고, 이 시대의 영웅입니다. 살아계실 때, 살갑게 말씀드리지 못했던, “사랑합니다” 라는 말. 늦었지만, 이제야 드립니다. 불효를 용서하세요. “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2010년 2월 23일, 개그우먼 김미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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