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선생님] 충주 중산외고 민병윤, 천안 쌍용고 팽주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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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윤 교사(오른쪽)는 중산외고 학생들과 함께 주말이면 충주성심맹아원을 찾아 봉사활동을 한다. [최명헌 기자]

“적어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부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생들을 돕기 위해 교사들이 학교 밖으로 나왔다. 은행이나 지역사회단체, 지인들을 만나 사정을 설명하고 장학금을 후원받는다. 출판사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어 참고서를 받아온다. 물론 불우한 학생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다. 이들은 “교사로 살면서 제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충주·천안= 최석호·박정식 기자

봉사활동으로 일궈낸 학생들의 장학금

충북 충주 중산외고 민병윤(48·과학과) 교사에게 1997년은 특별한 해다. “외환위기가 터졌잖아요. 2학년 담임이었는데, 제자 두 명이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수업료가 없어 학교를 나오지 않는 거예요.” 민 교사는 그때부터 1년에 200만원 정도 사비를 털어 불우 학생 2~3명의 수업료와 기숙사비, 참고서 비용, 간식비 등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3년 동안은 사비만으로 학생들을 도왔어요. 그런데 우리 반 학생들만 도와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그때부터 학생들의 장학금 조달을 위해 지역사회로 나갔다. 그러다 충주 지역 로터리클럽과 인연을 맺었다. “매년 6명의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후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죠. 150만원 정도였어요.”

대신 민 교사는 지역사회를 위해 학생들과 장애시설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중산외고 학생들은 그때부터 ‘인터랙트 봉사단’을 만들어 주말마다 충주성심맹아원을 찾는다. 봉사단원도 창단 첫해 20명에서 올해는 212명으로 늘었다. 학생들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로터리클럽의 후원금도 매년 300만원으로 늘어 이제는 매년 10여 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고 있다.

장학금 수혜자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2005년 민 교사는 충주지역 사업가들과 함께 ‘다사랑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20여 가구 저소득층 가정에 매년 20㎏의 쌀을 지급한다. 인근 학교에서도 학생들을 2~3명 추천받아 해마다 50만원을 장학금으로 후원한다. 또 충주의사회 회원 6명을 설득, 3명의 학생들에게 매달 10만원씩 용돈을 보내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돈 걱정 안 하고 공부해 훌륭한 사람이 됐으면 해요. 스스로 가난의 고통을 알기 때문에 10년, 20년 후에 불우한 학생들을 만나면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줄 수 있겠죠.”

고교생 세 딸을 둔 30대 젊은 아빠

지난해 2월 천안 쌍용고 팽주만(37·사회과) 교사는 한 학생을 만났다. 편입학을 위해 학교를 찾은 김민영(고1·가명)양이다. 김양은 가정폭력 문제로 2008년 말 어머니(42)를 따라 남동생(초4)과 함께 천안으로 이사했다.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파산신청을 했고, 방 얻을 돈이 없어 천안 YWCA 여성쉼터의 도움으로 방 3칸짜리 집에서 여섯가정이 함께 생활해야 했다. 김양에겐 수업료도, 책값도 교복 살 돈도 없었다. 팽 교사의 반에는 민영이와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이 또 있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였던 고미지(가명)양, 그리고 이우진(가명)양이었다.

“교복은 졸업생들로부터 기증받았지만 수업료와 책값 등이 문제였죠. ‘간식비라도 있어야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 텐데’ 하는 걱정뿐이었죠.” 팽 교사는 이들의 장학금을 구하기 위해 두 달 동안 지인들을 만나러 다녔다. 결국 지난해 5월 한 독지가로부터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한 달에 70만원씩 후원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학생들은 한층 밝아졌고 성적도 올랐다. 고양은 전교 50등 안팎이던 성적이 10위권에 진입했고, 반에서 30등 안팎이던 김양도 12등까지 올랐다.

그런데 지난해 9월 팽 교사가 갑자기 교과부 교과서기획과로 파견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팽 교사의 학생 돌보기는 계속됐다. 서울에 있으면서도 시간이 날 때면 천안지역 은행을 돌며 학생들의 장학금 지원서류를 접수했다. 김양은 올해부터 1년 동안 매달 20만원의 장학금을 추가로 받게 됐다. 교과서기획과에 근무하면서 출판사들에 도움을 청해 올해 2월 초 학생들은 25권씩의 참고서를 무료로 지원받았다. 17일 학교에서 팽 교사를 만난 학생들은 그를 “아빠”라고 불렀다. “30대 후반인데, 벌써 고2 올라가는 딸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직장을 잡을 때까지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후원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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