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씨 어른 위한 동화집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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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금 어른이 되어 나는 알고 있다.삶은 덧없는 것 같지만 매순간 없어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며 따뜻함이 어둠 속에서 빛난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해가 거듭되어 늙어가도 설은 매년 새롭게 맞이하듯 소설가 황석영씨가 최근 펴낸 어른들을 위한 동화 『모랫말 아이들』(문학동네 ·6천5백원)에는 삶에 대한 최초의, 변할 수 없는 설렘으로 가득하다.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 10편을 다룬 이 책은 기차를 타고 아득한 시간을 거슬러 '객지','삼포가는 길' 등 황씨 소설의 고향에 독자를 내려놓는다.

그렇게 찾아간 고향은 그러나 낭만적 ·전원적인 곳은 아니다. 6 ·25 전후 서울 한강변의 부서진 집과 버려진 아이들의 뒷골목 '모랫말'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따스하게 감싸며 사회정의를 내세웠던 황씨 소설의 뿌리로서 마춤한 공간이다.

능력 없이 외지로 떠도는 아버지.때문에 생계를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어머니 밑에서의 소년 수남이를 내세워 작가는 자신이 어린시절 겪었던 일, 해서 지금까지도 아름다움이며 따뜻함으로 되살아나는 원체험을 들려준다.

혼자 흘러들어와 강둑 갈대밭에 움막을 짓고 거지로 살다 마누라까지 얻어 잘 살려다 아이들이 놓은 쥐불에 아내와 갓난애를 잃고 다시 홀로 어디론가 떠난 꼼배.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사람들의 질시를 탓하지 않고 그는 마을을 위해 다리를 하나 놓아주고 떠난다.

학교 교사였던 엄마 친구가 양공주로 떠나면서 맡기고 간 러시아 혼혈아 귀남이, 그리고 역시 양공주 딸인 같은 반 학생 영화에게서 처음으로 눈 떳던 이성과 전쟁 당시 '점령군'에 짓밟힌 우리의 가련한 여인네 상이 흘러간다.

그런가 하면 식모누나 태금이의 사랑과 그 사랑마저 미친년으로 몰아버릴수 밖에 없는 이념 대립과 전쟁 등이 깔리고 있다.

영민하고 용감한 소년 수남이 눈을 빌리고 있으면서 황씨는 자신의 문학의 뿌리인 우리들 삶의 근원적인 한과 멋과 함께 시대적·사회적 어긋남도 감춰놓고 있다. 해서 이 작품은 어린이를 위한 동화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되는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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