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문화산책] 10. 모조 미술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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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연초에 금강산 온정리휴게소에서 관광객에게 판매하는 조선화를 사온 지인(知人)이 물어왔다.'진짜냐 가짜냐'는 질문이었다.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진짜도 없고 가짜도 없습니다"라고.

자본주의 예술거래의 입장에서는 예술품의 진위가 중요하다.

다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판화도 일련번호를 붙여 앞번호에 높은 값을 매긴다.그러나 예술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은 북한에선 위작(僞作)시비가 불필요하다.

북한의 미술품에는 똑같은 작품이 많다. 이른바 모작(模作)이다. 작품이 담고있는 종자가 확실하고 품격있는 예술성을 지닌 뛰어난 작품일수록 모작이 많다. 모작은 전문적으로 이루어진다.북한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미술창작기지인 만수대창작사도 모작을 만든다.

원작과 모작의 가격차가 많이 벌어지는 남측과 달리 북한에서 모작들은 만만치 않은 가격에 팔린다.만수대창작사의 예술가들은 흡사 사무직원처럼 출근하여 모작을 생산해 낸다.

미술품 거래도 특정 작가의 어떤 작품을 특정인만이 소유할 수 있는 남쪽과는 판이하다. 북의 예술가들은 당과 인민에게 봉사할 뿐이다.따라서 종자가 뛰어난 작품은 당연히 모작을 거쳐서 널리 공유된다.

본인이 직접 행하는 모작이 기본이지만,제3자에 의해서도 모작이 탄생된다. 예술가의 창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오로지 사회적 공유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같은 모작 창작과정은 북한 문화예술론의 핵심인 종자론에서 비롯된다. 종자란 '작품의 기본핵이며, 작품의 가치를 결정짓는 근본문제다. 소재의 선택과 구상으로부터 작품의 얽음새와 구성,성격창조 등 창작의 전과정에 전일적으로 작용하는 기본교리'다.

따라서 좋은 씨앗을 보급하듯 좋은 종자로 확인된 작품은 당연히 널리 퍼뜨려야한다.

'꽃파는 처녀'의 종자가 우수한 것으로 판명되자 가극은 물론이고 음악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매체로 재창작됐다.

얼마전에 서울의 한 언론사가 주관한 북한 공훈화가 정창모(69)전시회가 위작 시비에 휘말려 개막을 못한 적이 있다.

전시 예정작품의 다수가 위작이라고 당사자가 언급하면서 빚어진 사태였다. 후일담에 따르면 위작문제를 제기한 정창모 개인은 북에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당사가가 직접 그리지 않고 제3자의 손을 거쳐서 모사된 것을 본인이 위작으로 부인하고 나서자 나중에 곤욕을 치렀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작품을 사려는 사람들은 작품의 진위문제로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같다. 뛰어난 작품을 개인이 독점적으로 소유하려고 해도 모사작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정당한 모사작품이 아니라 연변 등지에서 대규모로 생산되는 위작들이다. 국내 미술시장에 이같은 조잡한 위작들이 몰려들어오면서 사실 북한미술품 거래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차제에 북한미술을 전문적으로 판별할수 있는 전문가를 길러야 한다. 분단시기에 창작된 북의 미술품들은 훗날 역사자료로서도 중요성이 인정될 것이다. 이래저래 북한문화 전문가들의 양성이 시급한 실정이다.

주강현 <우리민속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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