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입시요강 발표로 대학 개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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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대가 어제 2002학년도 입시요강을 발표했다.

전형방법 다양화와 모집단위 광역화, 학부 모집인원 대폭 감축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모집정원은 1999학년도의 4천9백10명보다 1천10명이, 올해보다 6백26명이 줄어든 3천9백명으로 대폭 감축됐다.

모집단위도 현행 80여개 학과 또는 학부별 모집방식에서 7개 계열 16개 단위로 통합했다.

그러나 인문대.자연과학대 등 16개 단과대학장 전원은 이날 결의문을 내고 학문 영역별 교육과정에 대한 합리적 대안 없이 모집단위 광역화와 학사과정 정원 감축이 이뤄지고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우리는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 대학들이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인재들을 길러내기 위해선 교육시스템과 커리큘럼 등을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가 전형방법을 다양화하고 모집단위를 광역화한 것 자체는 수긍할 만하다.

학부제 도입으로 학과별 장벽을 어느 정도 없애고 전공선택의 폭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 이해에도 불구하고 대학 개혁의 큰 틀을 내부수렴 없이 입시요강 발표 형식으로 덜렁 내놓고 있다는 사실이 괴상하다.

서울대측은 이번 입시방안이 '대학원 중심 대학' 을 지향하는 장기발전계획의 일환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학부 정원을 대폭 줄임으로써 수험생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어서 학부모들의 혼란도 예상된다.

적어도 이런 중차대한 틀의 변화를 예고하려면 대학원중심대학의 기본방향에 대한 대학 내부의 합의가 전제됐어야 했다.

더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학장들의 지적대로 정부의 '두뇌한국(BK)21' 사업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지난해부터 연간 2천억원씩 7년간 1조4천억원을 선정된 대학들에 지원하는 이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해 정부 요구대로 입시제도를 바꾼 셈이니 딱한 노릇이다.

입시제도 변경으로 대학 개혁을 한다는 해괴한 결과가 나온 셈이다.

대학 개혁은 구성원들의 중지를 모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만 개혁에 무게가 실릴 수 있다.

그럼에도 서울대측은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이 없었다. 학장들의 반발이 그 방증이다.

단과대학장 모두가 반발하는 상황에서 대학의 기본 틀을 고치는 이런 거창한 작업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개혁목표가 옳은 방향이라면 대학 내부도 학과간 밥그릇 챙기기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 개선안을 제시해야 한다.

교육부나 대학 당국도 당근만 앞세워 개혁의 꼬삐를 당길 것이 아니라 내부적 합의를 거쳐 지성적 결론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 개혁안은 타 국립대와 사립대뿐 아니라 일선 고교 교육현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보다 장기적 비전을 갖고 개혁 틀을 짜야 한다. 입시요강 발표는 그 다음에 나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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