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한국·EU는 윈윈 경제 파트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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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004년 5월 1일 유럽연합(EU)에 폴란드.체코.헝가리 등 동유럽국가와 지중해 10개국이 새로 가입했다. 15개 회원국에 불과하던 EU가 25개국, 인구 4억5000만명, 국내총생산(GDP) 규모 8조6000억달러의 초대형 단일 경제시장으로 거듭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EU는 이제 GDP 규모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이은 세계 둘째로 큰 단일 시장이다. 인구와 교육.생활.소비수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오히려 NAFTA보다 세계시장에 영향력이 더 큰 시장으로 꼽힌다.

하지만 한국은 이 중대한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세계경제의 판도를 바꿀 만한 중요한 이슈에 대해 세계 12위의 교역 대국인 한국의 정.재계와 언론, 그리고 국민들이 보인 관심과 반응은 이상하리만큼 미미했었다. 미국과 정치.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진 한국의 현실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향후 한-EU 관계와 한국의 균형 잡힌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EU에 한국은 이미 중요한 경제 파트너다. 한국은 반도체.조선.전자.자동차.생명공학 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EU.북미.중국.일본 등 기존의 대형 시장뿐만 아니라 남아메리카.동남아.중동.아프리카 등의 틈새시장에서도 중요한 교역 파트너로 올라섰다.

EU에 한국은 중국.미국.일본에 이은 제4위의 교역 파트너다. 통계에 따르면 2003년 한-EU의 교역액은 443억달러, 교역비중은 12%에 달했다. 또 2003년 말 기준으로 EU는 한국에 276억달러(전체의 30.37%)를 투자해 미국.일본을 앞섰다. 특히 EU의 대한(對韓) 투자는 제조업에 집중돼 있어 청년실업문제 해결과 선진기술 유입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한국과 EU는 경제적으로 이미 중요한 협력관계를 형성했고, 지금도 꾸준하게 발전시켜 가는 중이다.

지난해 EU에 신규 가입한 10개국 중 8개국이 옛 사회주의 체제의 동유럽 국가들이다. 경제구조 자체가 기존 서유럽 국가와는 많이 다른 나라들이 EU에 새로 들어왔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기존 회원국들은 상대적으로 생산비용이 낮은 동유럽 회원국에 그들의 축적된 자본과 기술을 투자해 비용 대비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 신규 가입국들 역시 기존 회원국들로부터 자본과 신기술을 도입해 궁극적으로 시장경제체제로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앞당길 수 있다. 이는 고용창출과 국민소득 증가, 구매력 확대를 통해 결과적으로 EU회원국 모두에 이득이 될 것이다.

이미 EU지역에 생산시설을 갖춰 놓고 자동차.통신장비를 중심으로 유럽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기업들에도 EU의 확대는 엄청난 기회다. 저마다 달랐던 신규 회원국들의 제품규격이 EU의 단일규격으로 통일되고, 경제 관련 법규와 제도가 국제화된다. 또 신규 회원국들의 사회 기반시설과 정보통신 시설 등에 국가적 차원의 대형 투자가 동반될 것이므로 건설.통신 분야에 강한 한국 기업들의 수출과 현지 진출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될 것이다. 한국 경제인들은 이런 점에서도 EU경제권 확대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난해 말 노무현 대통령의 영국.프랑스.폴란드 방문을 계기로 한국과 EU의 경제협력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다. 더 이상 EU가 지구 반대편의 화려한 역사가 숨쉬는 관광지로만 머물러선 안 된다. 한국은 동유럽 10개국 신규 가입으로 EU가 더욱 도전해 볼 가치가 커진 초대형 시장이란 점을 놓쳐선 안 된다. EU 회원국 확대에 따른 경제적 변화는 올해부터 가시화될 것이다. 한국은 좀 더 세밀한 관찰을 통해 EU와 적극적인 파트너 관계를 구축, 진정한 경제 협력 동반자로 21세기를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장자크 그로하 주한 유럽상의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