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 광고비 1억원...1억 명 눈길 잡기 위해 무한경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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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호 04면

수퍼보울(Super Bowl)은 프로 미식축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미국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다. 지난 6일 열렸던 수퍼보울은 1967년 처음 개최된 이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미 전역에서 1억650만 명이 시청했다. 이는 미국 TV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로, 27년 전 드라마 ‘M*A*S*H’의 마지막 회가 세운 1억597만 명을 경신했다.

김수경의 시시콜콜 미국문화 - 미식축구 광고

필드에서 선수들이 몸을 던져 경기를 펼치는 동안 장외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펼쳐진다. 바로 광고 전쟁이다. 수퍼보울 중계 중간에 삽입되는 광고들은 30초짜리 한 편당 30억원 정도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에는 총 68편이 방송됐으니 광고수익이 2000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가격이 아무리 비싸다 하더라도 광고주 입장에서는 자사 홍보에 이만한 기회가 없다. 1억 명이 넘는 시청자가 TV 앞에 모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광고주들은 30초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 전쟁을 벌인다. 그래서일까. 수퍼보울이 끝나면 각종 매체들은 광고에 대해 평점을 매기고 분석기사를 싣기도 한다.

수퍼보울에서 방송되는 광고들은 코믹한 것이 많다.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웃음만 한 게 없나 보다. 미국의 일간지 ‘유에스에이 투데이’가 뽑은 최고의 광고는 올해 88세의 여성 코미디언 베티 화이트가 젊은 장정들과 진흙탕에서 미식축구를 하는 모습을 담은 초코바 스니커즈 광고였다.

팬티 차림으로 들판을 행진하는 한 무리 남성들에게 “이제 바지를 입어야 할 때”라고 광고한 의류회사 다커스의 아이디어도 눈길을 끌었다. 영어로 '바지를 입다(wear the pants)'는'집안에서 주도권을 쥐다'는 뜻의 관용구. 방송이 나간 직후 이 의류회사는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의 최다 검색어에 올랐다.

광고주들은 수퍼보울 광고에 몸값 비싼 유명인을 기용하기도 한다. 올해의 경우 스티비 원더, 메간 폭스, 오프라 윈프리 등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 등장시키지 않고도 호평을 받은 광고가 있다. 올해 처음으로 수퍼보울에 광고를 내보낸 구글이 그 주인공. 광고에 등장하는 것이라곤 구글의 인터넷 검색창, 그리고 깜빡이는 커서가 전부다.

‘파리에서의 사랑(Parisian Love)’이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일련의 검색어들을 나열해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 미국 남성이 한 프랑스 여인과 사랑에 빠져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다’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구성해 냈다. ‘파리로 유학 가기’로 시작한 검색어는 결국 ‘아기침대 조립법’으로 끝을 맺는다.

한국의 현대자동차도 세 편의 광고를 내보냈다. 수퍼보울과 같은 큰 스포츠 이벤트에 모국 기업의 광고가 방송되는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지만 솔직히 실망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았다. 느리고 조용한 피아노 소나타를 배경음악으로 차종 ‘쏘나타’를 판매했던 현대차의 광고는 한창 달아오른 수퍼보울의 열기를 단숨에 썰렁하게 만들었다(시사주간지 ‘타임’은 이 광고에 대해 C-의 평점을 줬다).

수퍼보울이 열리는 날만큼은 남편에게 채널 선택권을 빼앗겨야 하는 나 같은 아줌마들에게 광고는 그나마 재미있는 볼거리가 되어주는 존재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 비싼 광고료가 고스란히 제품 가격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재미있다고 넋 놓고 웃을 일도 아니다. 차라리 광고할 돈 아껴서 물건값이나 좀 쿨~하게 깎아주지 말이다.



일간지에서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유학하고 있다. 음악과 문화 등 대중문화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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