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한 민심 … 일 자민당 “파벌정치 포기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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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간 존재해 왔던 일본 자민당의 상징인 파벌정치가 사라질 처지에 몰렸다. 지난해 총선 패배 후 5개월간 당 재건에 몰두해온 자민당 집행부가 7월 참의원 선거에 대비, ‘파벌정치 포기’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19일 요미우리(讀賣)신문 등 일 언론에 따르면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자민당 총재와 당 3역으로 구성된 당 집행부는 18일 회의에서 파벌와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농림수산상을 지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정조회장은 “파벌정치가 과거 낡은 자민당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어 당 재건을 위해서라도 파벌을 없애는 것이 마땅하다”고 역설했다. 각 파벌 사무실 폐쇄와 같은 구체적인 안도 내놓았다. 다노세 료타로(田野瀨良太郞) 총무회장 등 당 간부들도 이시바 정조회장의 의견을 지지하고 있다.

자민당 수뇌부가 파벌정치 포기를 논의하고 나선 건 다섯 달 뒤에 닥칠 참의원 선거 때문이다. 새롭게 거듭난 자민당이라는 이미지 없이는 선거 승리는 물론 당세 회복도 불가능하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郎) 민주당 간사장 등의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로 내각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했는데도 바닥을 기는 자민당 지지율은 꿈쩍도 않고 있다. 지난 주말 지지통신이 집계한 여론조사 결과 하토야마 내각 지지율은 35.7%, 민주당 지지율도 22.8%로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런데도 자민당 지지율은 민주당보다 낮은 14.6%에 그쳤다.

이 같은 움직임은 당내 신진세력이 불붙였다. 지난해 가을 당내 젊은 의원들로 구성된 당 재생회의는 “파벌정치를 중단하고 당 운영에서 파벌의 영향력을 일절 배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파벌을 이끈 경험이 있는 다니가키 총재는 “파벌에는 정보연락 기능이 있다”며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왔었다. 그럼에도 선거가 다가오면서 눈에 보이는 당 변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총선 패배 후 파벌이 유명무실해진 상황도 작용했다. 중견·신진 의원들의 잇따른 낙선으로 각 파벌은 반 토막이 난 상태다. 한때는 100명이 넘는 의원을 확보하며 일본 정치를 호령했던 최대 계파 마치무라(町村)파는 중·참의원 46명으로 줄어들었다. 파벌 세력이 크게 약화되거나 일부는 사실상 괴멸하면서 과거와 같은 파벌 조직력은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당내에는 “정보교환과 낙선의원들과의 교류 등의 역할은 당의 공적 조직이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파벌 폐지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파벌정치=1955년부터 지난해 총선까지 자민당 장기집권을 떠받쳐온 정치 이익집단. 당보다는 자신이 속한 파벌의 이익을 중시해 파벌은 ‘당 속의 당’으로도 불린다. 총리 선출부터 정부 여당의 주요 인사, 핵심 정책 결정, 정치자금 배분 등은 모두 파벌 간 조율에 의해 결정된다. 각 파벌은 공천권과 인사·자금으로 소속 의원들을 관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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