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 니로 무표정 연기 돋보인 '미트 페어런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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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미트 페어런츠' (원제 : Meet the Parents)가 특별한 코미디란 평을 듣는다면 그건 벤 스틸러와 로버트 드 니로 덕이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에서 카메론 디아즈에게 '좀 모자란다' 싶은 테드 역을 천연덕스럽게 해낸 스틸러는 어눌하지만 귀여운 이미지로 눈길을 끌었다.

이어 '키핑 더 페이스' 에서 유대교 랍비 역으로 한층 안정된 코미디를 선보였고 이번엔 좌충우돌하는 상황에서도 적절히 여유를 보이고 있다.

당초 짐 캐리를 의식하고 시나리오를 썼다지만 결과적으로는 스틸러가 캐스팅된 것이 다행이다.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없는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는 환갑이 멀지 않았음을 강조라도 하듯 그 연륜을 그대로 드러낸다.

딸과 결혼하겠다는, 못마땅한 사위에게 짓는 무표정한 표정과 고압적인 분위기로 할 말을 다하며 겁도 주는 대사 처리는 일품이다.

'대부2' '디어 헌터' '케이프 피어' 등에서 보여준 그의 카리스마가 이 작품에선 시큼하게 곰삭은 느낌이다.

얼마전 말론 브란도가 영화 '프리 머니' 에서 사위를 죽도록 미워하는 장인 역을 맡은 것과 비교하면 드 니로의 연기가 한 수 위다.

남자 간호사 그렉 퍼커(벤 스틸러)는 고양이 알레르기를 가진 골초다. 사랑하는 여인 팸(테리 폴로)과 결혼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한다. 그러나 그렉에게 닥친 첫 시련은 팸의 아버지 잭(로버트 드 니로).

잭은 심리전이 전공인 전직 CIA요원으로 흡연자를 죽도록 싫어하고 고양이를 애지중지하는 인물이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별난 잭에게 그렉이 잘 보이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그렉은 실수를 연발하고, 급기야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거짓말까지 해댄다. 그럴수록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꼬이고 뒤틀린다.

배우들의 연기에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은 인물들의 갈등과 뒤틀리는 현상이 억지로 만든 상황이 아니라 인물들이 부딪치며 자연스럽게 엮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전형적인 악역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뻔한 결말로 치닫고 초반부의 신선함이 다소 떨어지는 것이 흠이다.

이야기의 모티브가 장인과 사위의 갈등이라 진부하고 해피 엔딩이 예견되는 장르적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극장을 나서며 재미있는 영화였다고 말할지는 몰라도 연령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듯하다.

결혼을 앞둔 총각들은 "아무리 딸이 아까워도 장인이 좀 심하지 않나" 고 말할 테고, 사위를 볼 어른들은 "저런 청년이라면 내 딸도 주기 아깝겠다" 라고 은근히 한쪽으로 쏠릴 것같다.

지저분한 성적 농담이 가득한 '오스틴 파워' '오스틴 파워 제로' 를 연출해 코미디물에 재능을 보인 제이 로치 감독은 이 작품에서 한층 따뜻하고 세련된 유머를 구사한다. 13일 개봉.

신용호 기자

영화 속에 숨은 미국 중산층의 보수성을 읽는 것도 놓치지 말자. 장인의 반대에 은근히 동조하는 그의 식구들. 남자 간호사란 직업에 노골적인 거부감을 표시하고, 스틸러의 역중 이름 퍼커(Focker)의 발음이 욕설(Fucker)처럼 들리는 것을 악용해 비웃는데…. 사랑이 아니면 그 수모를 왜 견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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