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걸음' 민사재판 뜯어 고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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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법원은 최근 폭주하는 민사소송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3월부터 시행한다고 9일 발표했다.

이는 법원 자체 조사결과 소송이 늘어나면서 소송접수에서 재판시작까지 길게는 6개월이 걸리고 판결선고까지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으로 나타남에 따른 것이다.

◇ 실태〓1999년 초 서울지법에 P건설사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청구소송을 낸 金모씨는 약 2년 만인 지난해 말 1심 판결문을 받을 수 있었다.

첫 재판은 소장을 제출한지 두달 만에 열렸다. 그뒤 평균 4~5주 간격으로 재판날짜가 잡혔지만 증인이 출석하지 않는 일이 있어 실제로는 8~9주 만에 다음 재판이 열리기도 했다.

담당 재판장은 "金씨 사건은 특별 기일을 지정해 그래도 일찍 끝난 편" 이라며 "현재 우리 재판부에 배당된 사건이 5백건을 넘은 상태여서 신속한 재판진행이 어려운 실정" 이라고 토로했다.

법원행정처가 최근 전국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민사재판 진행상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3월 접수된 사건 기준으로 첫 재판기일까지 소요기간은 항소사건의 경우 길게는 1백83일, 짧게는 37일로 평균 88일이나 됐다.

재판부별 미제사건 수는 지방법원 항소심(2심)의 경우 전국 지방법원별로 최고 5백42건, 평균 4백92.7건이었고, 역시 2심인 고등법원은 3백54~2백6건으로 평균 2백67.2건이었다.

이처럼 미제사건이 많아지면서 나머지 사건들도 순차적으로 재판진행과 판결선고가 늦어져 소송 당사자들의 불만이 늘어나고 있다.

◇ 대법원 대책〓대법원이 마련한 '새 사건관리 방식' 에 따라 3월부터 법관들은 첫 재판을 하기 전에 미리 원고와 피고측으로부터 주장내용과 쟁점.증거신청을 제출받는다.

법관들은 첫 재판 때 쟁점부분을 파악한 뒤 그 다음부터는 주로 증거조사에 집중해 빨리 판결을 선고할 수 있게 된다.

대법원 공보관 김용섭(金庸燮)판사는 "새 제도가 실시되면 소송 당사자들은 법원에 자주 오지 않게 되고 법원은 재판을 신속히 진행할 수 있는 효과가 나타날 것" 이라고 설명했다.

또 재판 시작 전 사건을 조정에 넘기거나 당사자들간 화해를 적극 유도해 판사들의 사건처리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이와 함께 오는 2월 말 법관 신규임용 때 지난해보다 더 많은 법관을 뽑아 재판부 숫자도 늘리기로 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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