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심복 히믈러 말년에 '배신의 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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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8월 31일 영국의 첩보기관 MI6는 독일에서 서방으로 송신된 비밀 전보 한통을 가로채 윈스턴 처칠 총리에게 보고했다.

처칠은 전보를 곧바로 파기했다.

그동안 그가 보고받은 1만4천건의 암호 해독문 가운데 유일하게 파기된 이 전보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었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7일 "당시 파기된 암호 전보는 나치 친위대 SS의 창설자이자 실력자였던 하인리히 히믈러가 영국과의 휴전 협상을 도모하기 위해 서방 중재자에게 보낸 것" 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아돌프 히틀러 총통의 심복이었던 그가 히틀러 이후의 독일을 통치하겠다는 야심으로 종전 8개월여 전부터 변절하게 된 과정을 전했다.

당시 처칠은 독일과의 어떤 협상도 원치 않았다. 오히려 영.독 화전 논의설이 연합국의 일원인 소련과의 관계를 악화할 것을 걱정했다.

그러던 중 영국과의 협상 가능성을 타진하는 히믈러의 비밀 전보가 입수되자 싹을 잘라 버린 것이다.

이후 히믈러는 서방의 신임을 사기 위해 45년 2월 1천2백명의 유대인을 석방했다.

이를 알고 격노한 히틀러의 유대인 석방 금지 명령을 무시하고 그는 추가로 유대인 여성들을 석방하겠다고 약속했고 45년 2~4월에는 스위스 적십자사 부회장인 폴케 베르나도테 백작과 비밀 회동, 서방에 조건없이 항복할 뜻을 비췄다.

결국 같은 해 4월 28일 BBC방송을 통해 히믈러가 미국과 영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자 히틀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더러운 배반" 이라고 고함쳤고 이틀 뒤 자살했다.

그로부터 한달 후 히믈러 역시 군인으로 위장한 채 이리저리 도망다니다 치아 속의 극약 앰풀을 깨물고 숨졌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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