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치] 빙상선수의 ‘금벅지’에 담긴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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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치

한국체대 스포츠의학 오재근 교수

‘라우강구’를 아는가? 스케이트를 타 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라우강구는 스케이팅의 훈련방법 중 하나다. 스케이트를 타는 자세처럼 상체를 90도로 구부리고 유지하면서 뒷짐을 지거나 손을 흔들면서 하게 되는데 앞으로 나가는 한 쪽 무릎은 점프하듯 던지고 뒷다리는 뒤로 편다. 오리걸음도 쪼그려 뛰기도 아닌 것이 힘들기는 또 얼마나 힘든지 하다 보면 하늘이 노래진다.

거리는 50m, 70m, 100m로 나누고 단거리 연습과 장거리 연습에 따라 세트수와 시간이 다르긴 하지만으로 선수들의 경우라도 보통 40분 이상 하고 나면 다른 지상 훈련은 그야말로 장난 수준이란다. 빙상선수들이 힘들게 라우강구를 하는 이유는 달릴 때, 특히 스타트에서 피치를 올리기 위해서이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빙상선수들이 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가 참가 선수들의 피치가 이전에 비해 3~5회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 동안의 연습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스케이트를 탈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릎과 허리의 힘이다. 빠른 전진과 코너웍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수한 최대근력을 이용한 스피드와 파워가 겸비된 체력이 중요하다. 일반인, 달리기 선수, 스피드 스프린터를 비교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상체를 구부려서 계속 유지하게 하는 허리의 배근력과 복근력은 물론이고 달릴 때 무릎을 반복해서 구부렸다 펴기를 할 수 있는 무릎의 각근력과 근지구력과 스타트 때 발목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발바닥 쪽과 발등 쪽의 굴곡근력이 모두 필요하지만 무릎관절의 근기능이 경기력 향상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쨌든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상체를 구부리는 고관절과 스피드를 내기 위해 무릎을 구부리고 다리에 힘을 주는 굴곡 근육이 모두 엉덩이와 허벅지에 모여 있다. 따라서 스케이트는 엉덩이와 허벅지로 탄다고 할 수 있다.

가까이서 본 빙상선수들의 허벅지는 마치 헐크 같다. 단거리 스프린트에게는 최적의 조건이라지만 모태범 선수나 이승훈 선수나 170cm가 조금 넘는 키에 25인치가 넘는 허벅지와 엉덩이 크기, 게다가 150kg이상의 바벨을 들어 올리는 허리 근육들로 무장하고 있다. 이상화 선수조차 여자임에도 23인치나 되는 ‘금벅지’와 콤플렉스가 된 엉덩이 크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새벽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어둠을 뚫고 연습장에 도착하여 저녁 별 보기 운동을 해 온 지옥훈련을 견뎌낸 결과다.

전체적으로도 스피드 스케이팅의 단거리 스프린터는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근육량은 많고 지방량은 적어야 한다. 단거리 달리기 100m에 해당된다는 빙상 500m의 경우 보통 35초 이내에 승부가 나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생성해 내기 위해서는 산소를 이용하는 것 보다 근육 내에 저장되어 있는 ATP나 PC와 같은 에너지원을 직접 사용하는 것이 낫다. 따라서 지방에 의한 유산소성 심폐능력이 아닌 무산소성 파워능력이 좋아야 한다.

하지만 코너웍을 계속해야 되는 상황에서는 근력이나 파워 외에도 근지구력이 필요하다. 이번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도 코너웍 연습을 스피드 트랙이 아닌 숏트랙에서 했다고 한다. 직선 코스를 달릴 때와 코너웍을 할 때는 스케이트의 날이 쓰러지는 각도가 다른데 얼마나 숏트랙에서 연습을 많이 했으면 신발이 바닥에 거의 닿을락 말락해서 4코너 때도 밀리지 않고 소위 감아서 나오기 때문에 가속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금벅지’가 된 상황은 이러한데도 메달을 딴 선수들의 표정은 별일 없었다는 듯이 밝고 명랑하다. 하긴 평소에도 번개머리나 피어싱을 하고 연습을 하던 신세대니까 상황이야 어떻든 자신들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즐겁게 견디어 냈을 것이다.

한국체육대학교 스포츠의학 오재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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