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달리는 장애인' 유완영 IMRI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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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유완영(兪琓寧.39)IMRI 회장은 '달리는 장애인' 이다.

컴퓨터 모니터를 만드는 그의 회사는 창업 4년만에 연간 매출액 4백50억원을 기록하며 일약 업계 3위로 떠오른 신흥 강자다.

특히 지난해부터 유럽 최대 할인매장 월마트와 메트로 프로마트 등에 입점하면서 매출액의 90% 이상을 수출(연 4백30억원)로 달성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선천성 소아마비를 앓아 심하게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일년에 2백일 정도를 해외 대리점들을 찾아다닌 그의 땀방울이 일궈낸 결과다.

兪회장은 한편으로 북한 전문가로도 성가를 높이고 있다.

그는 1998년 4월 국내 전자업계 최초로 평양 대동강변에 북한 평양전자제품개발회사와 합작으로 컴퓨터 모니터 생산공장을 설립했다.

이 공장은 부지와 노동력을 북한이 제공하고, 설비투자비와 인건비를 IMRI가 부담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합영이나 단순 위탁 임가공 방식을 절충한 이 방식은 원가절감과 안정적인 생산에 성공해 이른바 '윈 - 윈' 형 경협 모델의 표본으로 꼽힌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남북경협의 교과서' 다.

- 올해 대북사업 전망은.

"미국에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상 과거처럼 활발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북한을 통해 꼭 돈만 벌겠다고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기업인인 저라도 나서야 겠다는 취지죠.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북한과 제조업을 하려는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서운해요. "

- 아직 북한과의 사업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은데.

"중국의 중계인들을 통해 부정확한 정보를 갖고 북한에서 임가공 사업을 추진하다 실패한 회사가 많아서일 겁니다. 북한 투자는 리스크가 따르지만 마라톤처럼 길게 봐야 합니다. 북한의 특성을 알고 이익모델만 찾으면 성과도 크지요. "

- 북한과 사업을 추진하게 된 계기는.

"80년대 20대의 젊은 혈기로 러시아 보드카를 들여다 팔다가 파산했죠. 도저히 한국에선 재기하기 힘들 것 같아 구 소련으로 건너갔습니다. 소련 때문에 망했으니 소련에 가서 성공하자는 오기였죠. 한 6년쯤 해외 떠돌이로 지내다가 자연스레 북한의 존재를 인식하게 됐습니다. 93년 체첸사태로 러시아가 혼란에 빠져 미국으로 건너가 대북투자 컨설팅을 시작하게 된 게 직접적인 동기가 됐습니다."

그는 미국 LA에서 '제임스 유' 라는 이름으로 북한에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에 북측 경제단체를 소개시켜 주고 투자를 성사시켜주는 일을 맡았다.

'제임스 유' 라는 이름은 007 제임스 본드에서 따온 것이다.

96년 단돈 5백40달러를 쥐고 귀국한 그는 경북 상주에 있는 한 기업체의 대북투자 컨설팅을 맡았다가 이 업체가 부도가 나자 기업을 헐값에 인수해 직접 모니터 생산사업에 뛰어들었다.

신체장애에 파산의 쓰라림을 딛고 대북 투자자문가 '제임스 유' 로, 벤처 기업가 '유완영 회장' 으로 거듭난 그는 올해도 변함없는 질주를 다짐하고 있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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