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밴쿠버] 착한 남자, 강한 남자, 마침내 가장 빠른 남자 ‘모터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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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범이 금메달을 확정 지은 후 네덜란드 관중이 던져준 독특한 모양의 모자를 쓰고 응원단을 향해 익살맞은 동작으로 춤을 추고 있다. [밴쿠버=연합뉴스]

그는 시상대에 올라서기 전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이름이 불리자 시상대 맨 위에 당당하게 올라섰다.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일본 선수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은 앳된 청년은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 막내 모태범(21·한국체대)이었다.

모태범은 16일(한국시간) 캐나다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1, 2차 시기 합계 69초82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일본의 나가시마 게이치로(69초98)와 가토 조지(70초01)를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500m 월드컵 랭킹 1, 2위 이강석(22)과 이규혁(32)에게 가렸던 3인자, 월드컵 랭킹 14위에 불과했던 대표팀 막내의 짜릿한 반란이었다.

◆몸싸움 싫다는 착한 아들=모태범은 집에서도 누나 한 명을 둔 막내다. 아버지 모영렬(51)씨, 어머니 정연화(49)씨가 말하는 막내는 무뚝뚝하지만 착한 아들이다. 여덟 살 때 취미로 스케이팅을 시작했는데, 주위에선 메달 가능성이 높은 쇼트트랙으로 전향하라는 권유가 많았다. 그러나 어린 모태범은 “쇼트트랙은 몸싸움을 해야 하는데, 난 그게 싫다”며 고집을 피웠다. 그렇게 그는 한눈 팔지 않고 세계 정상까지 내달렸다.

사춘기엔 잠깐의 방황도 있었다. 경희중 시절 골반까지 다치자 스케이트를 그만두겠다고 버텼다. 20일을 기다린 부모가 모태범을 다시 스케이트장으로 끌고 나왔다. 그 후로는 한 번도 부모 속을 썩인 적이 없다.

하지만 집에서는 ‘재미 없는’ 아들이다. 태릉선수촌 생활 중 전화를 걸어오면 강아지 ‘칸’의 안부부터 묻는다. 살갑게 말할 줄 모르는 아들은 밴쿠버로 떠나기 전 부모에게 인사하며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다. 두고 보자”고 말했다. 아버지는 ‘이 녀석, 뭔가 해내겠구나’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타고난 강심장=모태범은 2006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500m 1위, 1500m 2위, 3000m 3위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다. 2008년 처음 성인 국가대표로 월드컵 대회에 출전해 5차 대회 1000m 2차 레이스에서 5위에 올랐다. 2009~2010시즌 네 차례 월드컵 시리즈에서 2차 대회 1000m 3위, 5차 대회 1000m 4위를 차지하며 세계 정상권에 근접했다.

그는 큰 무대일수록, 상대가 강할수록 힘을 내는 강골이다. 경기 직전까지 이규혁과 이강석이 스포트라이트를 양분했지만 모태범은 기죽지 않았다. 이날 500m 2차 레이스에서 함께 달린 세계기록(34초03) 보유자 제레미 워더스푼(34·캐나다) 옆에서도 당차게 빙판 위를 내달렸다. 워더스푼에 쏠린 홈팬들의 환호는 오히려 모태범의 투지를 이끌어낸 에너지였다.

중거리가 주종목인 그는 강력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안정된 스트로크를 자랑한다. 스피드가 빠르진 않지만 빙질이 무른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는 체력 싸움이 관건이었다. 세계 정상권 선수들이 헛걸음하는 사이 모태범은 강력한 파워로 거친 얼음을 이겨냈다.

네티즌들은 모태범이 마치 모터를 달고 달리는 것처럼 빠르다며 ‘모터범’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모태범의 부모는 한국시간으로 아들의 생일이었던 15일 밤 길몽을 꿨다고 한다. 모영렬씨는 “나와 태범이 엄마가 각자 좋은 꿈을 꿨다. 태범이 주종목은 1000m(18일), 1500m(21일) 아닌가. 그때까지 천기누설하고 싶지 않다”며 웃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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