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택은행 파업 강경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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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국민.주택은행 노조의 파업 장기화에 대비해 '배수의 진' 을 쳤다.

국민.주택은행에 기업은행과 농협 직원을 지원군으로 보내 88개 점포의 문을 열도록 한 것이나, 아예 두 은행 고객이 기업.한빛.신한은행 지점에서 통장만으로 입출금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한 데서 그런 의지가 읽혀진다.

특히 기업.한빛.신한은행에서 입출금을 대신할 수 있게 한 것은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국민.주택은행 고객들이 이들 은행으로 옮겨가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어 두 은행 파업에 상당한 압박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우선 영업재개〓현재로선 노조의 자진해산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공권력이 투입되더라도 당분간 정상영업은 어렵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공권력을 투입해 노조원들을 강제 해산시키더라도 이들이 직장에 곧바로 복귀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25일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노조 파업이 계속되더라도 두 은행의 고객들이 최소한의 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데 집중돼 있다.

일단 국민.주택은행이 88개 지점에서 문을 열도록 하고 파업이 계속되면 아예 국민.주택은행의 업무를 기업.한빛.신한은행으로 이관시킨다는 게 정부 복안이다.

문제는 국민.주택은행의 전산시스템이 기업.한빛.신한은행과 달라 모든 업무를 대행할 수 없다는 점인데, 우선 입출금 업무부터 가능케 하고 파업이 장기화하면 대출이나 어음할인 업무까지 대신할 수 있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 은행도 대책마련〓주택과 국민은행은 26일부터 30일까지 전직 금융기관 직원들을 일당 20만원에 채용(문의:주택 02-769-8425~7, 국민 02-317-2181~3)해 가동 점포수를 늘려나간다는 방침이다.

주택은행은 또 26일부터 고객들이 전국 1천7백여개 새마을금고에서 국민주택기금과 당좌대출을 제외한 모든 대출상품의 이자를 납부할 수 있고 예금입금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한 주택은행 카드로 삼성.LG투자.대우.현대투신증권 등 4개 증권사 전국 본.지점의 자동화기기에서 입출금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두 은행은 23일부터 파업종료시까지 발행한 각종 온라인송금 수수료를 나중에 영업이 정상화한 뒤 환불해 주기로 했으며, 자기앞수표와 각종 증명서 발행수수료는 면제해 주기로 했다.

두 은행은 당초 고객들이 타은행 기기를 이용할 때 수수료를 면제해주려 했으나 전산프로그램에 문제가 있어 사후 환불로 바꿨다.

◇ 남은 과제〓두 은행 파업이 예상보다 길어질 경우 금융권 전체가 심한 홍역을 앓을 전망이다. 벌써부터 일부 은행에서는 국민.주택은행의 자기앞수표를 받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수표를 현금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두 은행의 영업정상화가 늦어질 경우 신용거래 시스템이 마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은행 여의도지역의 한 영업점에서는 지난 23일 거래기업이 5억원을 인출하면서 수표 대신 현찰을 요구하는 바람에 지점 금고의 현찰을 차에 실어 옮겨주기도 했다. 은행 관계자는 "파업으로 직원들이 턱없이 모자라는 판에 여간 큰 애로가 아니다" 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의 자금난도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어음할인 등 소액대출은 다른 은행 지점에서 할 수 있도록 조치하긴 했지만 연말을 앞두고 어음결제대금 수요가 많아 신용도가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자금난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두 은행도 파업으로 영업에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국민은행 한 직원은 "은행을 살리자는 파업이 자칫 고객들을 잃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고 말했다.

정경민.김원배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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