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은행 완전감자의 뜻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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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9월말 2조2천억원이나 남아 있다던 한빛은행의 자기자본이 어떻게 석달도 안돼 몽땅 증발할 수 있습니까. "

한빛.서울.평화 등 6개 은행의 자기자본을 전액 감자(減資)하기로 하자 이렇게 따지는 독자들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해당 은행들의 부실을 계산해보면 자본금을 모두 날릴 수밖에 없게 돼 있다.

◇ 감자는 왜 하나〓은행도 기업인 이상 회계장부에서 차변(자산)과 대변(부채+자기자본)이 같아야 한다.

예컨대 고객예금(부채)이 5천억원이고 자기자본이 5백억원인 은행을 가정해보자. 이 은행은 고객예금과 자기자본으로 대출을 해주거나 사옥을 사고, 얼마만큼은 현금으로도 갖고 있다. 어쨌든 대출.부동산.보유현금 등 자산을 모두 합치면 5천5백억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거래기업 부도로 대출금 중 5백억원을 떼였다면 자산이 5백억원 줄게 된다. 회계장부상 차변과 대변을 같게 맞추자면 부채나 자기자본을 5백억원 줄여야 하는데, 부채(고객예금)는 고객의 재산이라 손을 못대니 자기자본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게 감자다.

바꿔 말하면 은행 감자는 대출을 해줬다 떼였거나 투자를 잘못해 본 손실을 자기자본으로 메우는 것을 말한다.

손실이 자기자본 이상이면 전액 감자를 하고 자기자본보다 적으면 부분 감자를 한다.

회계법인 KPMG 김준경 상무는 "감자란 평소 회계장부에 반영하지 않고 있던 손실을 한꺼번에 장부에 반영하는 절차" 라며 "이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은행의 자기자본이 사라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와 달리 미국에선 자산을 시가(時價)로 평가하기 때문에 특정시점의 손실을 회계장부에 반영하는 식으로 감자를 하지는 않는다" 고 덧붙였다.

◇ 전액 감자를 하는 이유는〓감자의 폭은 대출금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

예컨대 지난 9월말까지 은행들은 동아건설이나 11월 3일 퇴출에 포함된 기업에 내준 대출금을 회수 가능성이 큰 쪽으로 분류했다. 지난 11월에 각 은행들이 9월말 현재 자기자본이 수조원 남아 있다고 밝혔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정부로선 대출금을 엄격하게 평가할 수밖에 없는 입장. 조금이라도 부실가능성이 있는 대출은 다 털어내고 공적자금을 넣어야 새로 넣는 공적자금이 의미있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인 기업이나 11.3 퇴출에 포함된 기업의 대출금은 거의 떼인 것으로 간주해 손실을 계산했다.

그 결과 6개 은행의 손실규모가 자기자본보다 큰 것으로 나왔고, 따라서 완전감자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 정부 입장, 왜 오락가락 했나〓지난 5월 이헌재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은 "공적자금을 넣은 은행의 감자는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같이 말한 이유는 당시까지만 해도 정부는 공적자금을 추가로 조성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은행에 부실이 생겨도 공적자금을 지원해 이를 메워주지 않겠다는 방침이었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서 굳이 은행 대출금을 엄격하게 평가해 손실을 모두 반영하라고 명령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진념 경제팀이 들어선 후 공적자금 추가 조성으로 정부 방침이 바뀌었고, 은행에도 공적자금을 더 대주기로 한 이상 손실규모를 따져 감자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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