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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운동권 무엇을 노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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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고교등급제 논란의 배후에는 운동권 교육 노조.시민단체가 도사리고 있다. 특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등급제 문제 쟁점화를 통해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의 무력화를 노리고 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새로운 대입제도는 학교생활기록부 위주로 치러진다. 수능은 9등급으로 나뉘어 활용됨으로써 변별력(辨別力)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학생부에는 성적은 기본이고 특별.봉사활동 상황과 독서의 정도, 특기 생활 등 고교생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긴다. 학생부는 교사들이 기록한다. 교사가 얼마나 성실하게 기록하느냐에 따라 학생의 대학 진학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학생의 운명이 교사의 자의적인 평가에 달려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일은 대학들이 학생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주요한 입시자료로 수용할 때 가능하다.

2002학년도부터 시작한 수시모집은 학생부와 자기소개서.학교장추천서 등이 전형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자 일선 고교에서 성적 부풀리기가 거리낌없이 성행한다. 반작용으로 일부 대학은 내신 반영률을 최소화하는 대신 고교의 합격자 숫자와 수능 성적 등을 토대로 등급제를 실시하기에 이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등급제는 고교와 학부모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만다. 전교조와 학부모 단체가 이를 모를 리 있나. 정식으로 문제 삼을 시기를 노리고 있었을 뿐이다. 새 대입제도가 한창 논의되고 있는 현 시점보다 더 적합한 때가 있겠는가.

또 교육부의 실태조사 결과 등급제 채택이 확인된 연세대의 교수와 총장 출신이 각각 교육부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호기인 것이다. 지난해까지 대학에서 입시에 직접 관여한 교육부총리와 비서실장을 압박하는 것처럼 좋은 투쟁 방법은 없을 터이다. 모교를 특별감사하라는 요구에 시달리는 교육부총리는 얼마나 곤혹스러울까.

대학의 학생선발권과 입시 자율성을 박탈해 자신들의 입맛대로 교육하고 평가한 학생들을 대학에 충원하는 것이 교육운동권의 목표라고 하겠다. 궁극적으로는 평준화체제를 대학에까지 연장하고 나아가 대학마저 장악하려는 심사다. 일반 교육 행정을 비롯, 초.중.고의 교육 내용과 평가는 전교조의 생각대로 움직인 지 오래다. 내용이 부분적으로 친북.반미 성향이 짙은 교과서의 채택률이 가장 높은 것을 보라. 국익과 대다수 국민의 정서와 괴리된 일방적인 반미와 미군 철수 주장이 버젓이 실린 여중생 사망과 이라크전 계기수업 자료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젊은이들은 여론조사 때 미국을 동경하지만 가장 싫어하는 나라라고 응답한다. 전교조는 승리로 끝난 지난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반대 운동과 같이 밀어붙이면 정부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다. 전교조의 방식대로 이념 편향적인 교육을 받고 학력도 떨어지는 신입생이 대학 캠퍼스를 가득 채운다면 국가의 장래는 정말로 암담하다.

과연 전교조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 등급제의 책임은 누가 뭐래도 성적 뻥튀기기에 앞장서거나 방조한 학교와 교사들에게 있다. 전교조 조직원은 9만여명으로 전국 곳곳의 고교에 포진해 있다. 진정한 스승이라면 학생 개개인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제자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행위는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사육에 불과하다. 다시 촉구한다. 전교조는 미망에서 벗어나 참교육의 길로 들어서기를.

도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