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열린 녹색 리더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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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호 34면

지난해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제15회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회의(COP 15)’는 인류의 당면 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비록 기후변화라는 단일 주제를 다루었지만 빈곤과 저발전, 개발원조, 자연재해, 에너지, 거버넌스, 경제발전의 방식·내용에 대한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광경을 전 세계에 여과 없이 보여준 회의였다. 인류 생존을 위한 21세기의 새로운 범지구적 기후체제의 틀을 마련한다는 명분과 기대를 저버린 채 200개 가까운 참가국들은 ‘유념하겠다’는 정도의 이상한 합의문을 발표하는 데 그쳤다. 거창한 구호에 비해 그 결과는 초라했다.

합의문에는 올해 1월 말까지 참가국들이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한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참가국의 3분의 1 수준인 55개국만 이를 실행했을 뿐이다. 또한 2013년부터 전 세계 국가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기후 체제를 창출하기 위해 올 5월 말 독일 본에서 고위급 회의를 열고, 12월 멕시코시티에서 ‘COP 16’을 열기로 했지만 여기서 원만한 합의를 도출해 새로운 기후 체제의 틀을 마련할 전망은 밝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COP 15’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한국이 타산지석으로 받아들일 부분은 적지 않다. 올 11월 서울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에서는 경제위기 극복과 함께 기후변화와 환경보존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미 자발적 감축 목표를 발표한 한국은 G20 의장국으로서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고, 참가국들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G20 회의는 한국이 글로벌 리더십의 역량을 인정받기 위한 첫 번째 주요 관문인 셈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세계가 한국에 요구하는 게 무엇이고, 한국은 세계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정리하는 한편 이를 보편적인 언어로 주장하고 설득할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코펜하겐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2012년 ‘COP 18’ 유치 의사를 강력하게 밝혔다. 만약 이 제안이 실현된다면 한국은 지금까지의 성공 사례를 치밀하게 재검토하고 이를 설득력 있게 홍보해야 한다. 한국은 기상이변 완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삼림녹화를 가장 성공적으로 추진한 국가다. 그것도 자력으로 말이다. 해외 원조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여타 개도국과 극명하게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한국의 이런 성과는 기후체제의 핵심 의제인 온실가스 감축과 2020년까지 개도국에 매년 1000억 달러씩 지원되는 기후원조기금 조성, 새로운 국제기구 설립 논의 등에 활용될 수 있다.

COP 15가 끝난 뒤 뢰트겐 독일 환경부 장관은 기후양심세력들이 중국과 개도국 모임인 77그룹, 그리고 미국에 대응할 수 있는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양심세력으로 유럽연합(EU)과 일본, 호주, 한국을 지목했다.

한국은 이런 긍정적 평가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요즘 한국은 중국-미국, 유럽-산유국 사이를 원만하게 중재할 수 있는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발전, 정치적 민주화, 한류의 확산, 그리고 최근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전략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호응을 유도할 수 있다.

한국이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그에 상응하는 지위를 얻으려면 2012년 COP 18이 열릴 때까지 한국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정리해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회의를 치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미국·유럽의 논리에 대응하기 위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준비를 한 것처럼 우리도 정부·학계·시민사회로 구성된 준비위원회를 가동하는 게 필요하다. 물론 이런 노력의 전제는 기상이변과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인류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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