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이동관 “박근혜 의원이 실언 … 최소한 예의 지켜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 [조문규 기자]

청와대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측의 갈등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청와대는 이동관 홍보수석이 직접 나서 “공식 사과”를 요구했고, 박 전 대표는 “문제가 있으면 있는 대로 처리하면 될 거 아니냐”고 되받았다. ‘강도’ 논쟁에서 시작된 여권 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공방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이젠 양측의 감정이 여과 없이 노출되기에 이르렀다. 이 수석은 박 전 대표를 “박 의원”이라고 호칭했다. 박 전 대표 측은 “당 중진에게 예의가 없다”고 했다. 세종시 원안을 수정할지 여부를 놓고 시작된 논쟁은 정책의 울타리를 넘어 권력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물밑에서 수군대는 수준이었던 분당 시나리오까지 슬금슬금 고개를 들고 있다. 여권의 내분은 민심이 전국을 한 바퀴 도는 설 연휴가 분수령이 될 것 같다.

청와대 브리핑장, 11일 오전 10시. 이동관 홍보수석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박근혜 의원’이라고 불렀다.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갑자기 마음이 변해 강도로 돌변하면 어떡하느냐”는 박 전 대표 발언 이후 들끓는 청와대 기류를 이 수석이 ‘호칭 격하’로 표출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여당의 정치 지도자가 사실 확인도 없이 이명박 대통령을 ‘강도’로 모는 듯한 발언을 했고, 이후 측근 의원(이정현 의원) 명의로 ‘특정인을 지목한 게 아니다’는 보도자료만 달랑 냈다”며 “여당 의원이 대통령을 향해 ‘특정인’ 운운하며 폄하하는 상황에선 대통령의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 수석은 "이번 일은 (박근혜 의원의) 실언 파문이라고 규정하고 싶다”며 "최소한 대통령에 대한 기본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고위 관계자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보도한 신문들을 본 이 대통령은 너무 기가 막혀서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에 대한 이 수석의 사과 요구에는 이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홍보수석의 실명을 내걸고 사과를 요구하는 브리핑을 한 데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을 ‘실언 파문’이라고 정의해 비판했기 때문에 여권에선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에선 “갈등이 당분간 확대되고 확전이 불가피하겠지만 이번 일을 그냥 눈감고 지나가선 안 된다”는 강경론이 비등한 상태다. 대통령의 핵심 참모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은 명백하게 잘못된 언론 보도를 근거로 했고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명백한 실수”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의 강공엔 설 연휴 이후 본격화할 여당 내 세종시 투쟁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많다. 이 수석도 브리핑에서 “정치인의 최종 판단 근거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자세” “세종시법안의 일점일획도 못 바꾼다고 하니 무슨 대화가 되겠느냐”고 하는 등 세종시 문제를 두루 거론하면서 박 전 대표를 비판했다. 청와대는 설 연휴를 세종시 여론전의 중요한 고비로 보고 있다. 수세적으로 설 연휴를 맞기보다 박 전 대표의 발언과 그에 대한 청와대의 공세를 명절 밥상의 화제로 올리겠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 있다고 여권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번 파문을 계기로 박 전 대표 측과 결별하게 될 것이냐’는 물음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 양 진영 모두 원치 않는다”며 선을 긋고 있다.

글=서승욱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