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윈도] 두 동강난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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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이 완전히 갈라지고 있다. 대선 분열상이 갈수록 심해지더니 미국 최고 권위라는 연방대법원에서 절정을 보이고 있다.

민주.공화당으로 나눠진 미국인의 대립은 기록을 경신했다. 플로리다주에서 공화당 조지 W 부시와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간 표차는 현재까지 1백77표다. 전체 투표구가 6천여개이므로 약 30개 투표구당 1표의 차이가 났다는 얘기다. 기적에 가까운 양분(兩分)이다.

게다가 연방상원 의석은 역사상 처음으로 완전대칭(50대50) 구도다. 양당이 동수였던 전례가 있긴 하나 그 때는 무소속이 끼어 있었다. 하원의석도 공화 대 민주가 50.8% 대 48.7%다.

개표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언론도 논조가 엇갈렸다. 똑같은 법전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도 각각이다. 진보파 학자들은 민주당 쪽으로 문구를 읽고, 반대 학자들은 해석도 거꾸로였다.

심판자인 사법부도 나뉘었다. 주지방법원과 주대법원.연방대법원이 서로 등을 돌렸다. 종국엔 플로리다주 대법원도 4대3으로 갈렸다. 연방대법원 역시 5대4로 쪼개졌다.

지난 4일 주대법원의 선거결과 인증시한 연장문제를 다룰 때만 해도 연방대법원은 갈등을 감추려 애썼다. 대법관들은 파기환송 결정을 내리면서 전원일치 의견서를 내놓았다.

그러나 벼랑끝에 다다르자 대법관들은 노골적인 정치적 색깔을 드러냈다. 플로리다주 수검표를 중단시키라는 결정을 9일 내리면서 연방대법원은 품위와 자제력이라는 그동안의 전통을 깨버렸다.

수검표를 지지한 4인의 소수파는 5인의 다수그룹이 현명하지 못하게 처신했다고 비난했다. 판사라면 모름지기 솔로몬왕을 지향하는 터에 그보다 더한 모욕이 있을 수 있을까. 이에 질세라 다수파는 아예 부시 승리를 암시하는 문구를 집어넣기까지 했다.

연방대법원의 분란을 지켜보는 학자들도 편이 갈린다. 텍사스 법과대학원의 진보적인 헌법학자 샌퍼드 레빈슨은 워싱턴 포스트에다 수검표 중단을 지지한 판사들을 가리켜 "이들은 자신들의 후보를 대통령에 앉히기 위해 어떤 일도 하려고 드는 5명의 강경우파 공화당원 같다" 고 묘사했다.

반면 카르도조 법과대학원 존 맥기니스 교수는 "연방대법원 결정은 국민들이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선거결과를 만들기 위한 최상의 방법" 이라고 옹호했다.

미국의 양당 문화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견제와 균형으로 미국의 생명력을 지켜왔다. 그러나 2000년 대선은 그 건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국가를 심각한 분열로 몰고 가고 있다.

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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