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은 걷기가 힘들다.
전국의 도로는 차량 위주로 설계됐고, 비좁은 보도는 각종 적치물과 노점.입간판이 차지하기 일쑤다. 그런가 하면 보도가 갑자기 끊어지고, 있어야 할 곳에 횡단보도도 없다. 사통팔달해야 할 길이 너무나도 불편하다.
회사원 민경수(閔慶洙.33)씨는 지난 4일 직장에서 나와 서울 한강의 한남대교로 향했다. 문득 강 건너 신사동까지 걸어가고 싶었다. 그가 한남대교 북단 쪽에서 다리 입구에 도착하자 검문용 바리케이드가 보도를 가로 막는다.
보도를 벗어나 차도를 걷기 세차례. 이윽고 다리 남단에 도착했지만 길을 건널 수 없다. 보도가 끊긴 것이다. 건너편 보도에 '인도 없음, 통행 금지' 표지판이 있다.
하는 수 없이 차도 두곳을 무단 횡단했다. 閔씨는 "보도가 갑자기 실종되다니 말이 되느냐" 고 말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19개 교량 중 보도가 있는 곳은 15곳. 서울시는 "한남대교 외에 다른 교량은 인근 인도와 잘 이어져 있다" 고 설명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실제로 걸어 건너기에는 위험한 곳이 많다. 반포대교 남단은 횡단보도 표지판이 있지만 차도 위 횡단보도 선은 지워져 알아볼 수 없다.
횡단보도가 있는지 모르는 차량들은 '일단 멈춤' 을 하지 않고 달린다. 잠수교의 보행로는 정비가 안돼 걷기 힘들다.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허억(許億)실장은 "도로나 교량을 보행자가 아니라 차량 위주로 건설해 왔기 때문" 이라고 지적했다.
도봉산 천축사 원공스님은 "길의 주인은 사람" 이라며 "사람이 마음놓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을 확보하자는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고 말했다.
서울시와 전국 지자체가 의욕적으로 건설 중인 자전거도로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역~양재역으로 이어지는 양재대로 우측의 자전거도로는 내렸다 탔다를 반복해야 한다.
자전거 도로가 끝나는 양재역 네거리에는 길을 건널 횡단보도가 없다. 가까운 횡단보도까지 4백여m.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려면 한참 돌아야 한다.
강갑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