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최후 심판 주 대법에 떠넘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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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4일 내려진 연방대법원 결정과 플로리다주 순회법원의 무효처리표 재검표 신청 기각으로 미 대선은 최종적으로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판단에 의존하게 됐다.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살아나려면 주대법원은 두 가지를 해줘야 한다. 하나는 플로리다주에서 수검표를 하고 개표 결과 보고시한을 늦춰야 하는 법적 논리를 충실하게 보강하는 것이다.

연방대법원이 4일 주 대법원 결정의 근거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일단 무효 판정을 내리면서 재심의 기회를 줬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주대법원이 주 순회법원 결정을 뒤엎고 고어측의 재검표 요구를 수락하는 것이다. 주대법원이 마이애미-데이드와 팜비치 카운티의 1만4천여 논란표만 재검표하라고 하면 고어에겐 최상의 카드다. 하지만 이런 결정이 나오긴 쉽지 않다.

주 순회법원이 고어측의 수검표 재실시 요구를 뿌리친 것은 사안이 단순하고 향후 절차(주대법원 상고)도 명백해 별반 논란이 되지 않고 있다.

반면 연방대법원의 명령은 내용이 아리송해 언론도 해석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대부분 언론은 이번 결정이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에게 유리하긴 하지만 완전히 그의 손을 들어준 것은 아니라고 풀이한다.

연방대법원 결정은 대법관들의 서명이 없는 일종의 간이 의견서 형태로 나왔으며 사전 예고없이 기습적으로 언론에 배포됐다.

결정문의 핵심은 두 줄기다. 하나는 연방헌법이 선거인단 선출방법의 권한을 주의회에 부여하고 있고, 이에 따라 주의회가 만든 선거법이 선거일 7일 후(지난달 14일)까지 개표결과가 집계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주대법원이 이를 26일로 12일간 연장한 법적 근거를 보다 확실하게 밝히라는 것이다.

주대법원은 그동안 "선거법의 상충하는 재개표 조항들을 합리적으로 해석한 것이지 주의회의 권한을 침범한 것이 아니다" 고 주장해 왔다.

다른 하나는 주대법원의 법리 전개가 모호하기 때문에 주대법원 결정이 연방법을 위반했는지를 판단해달라는 부시측 신청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겠다는 것이다. 부시측은 전자가, 고어측은 후자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만약 주대법원이 연방법이 아니라 철저하게 주선거법에 의거해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다시 설명하고 이에 따라 연방대법원이 "연방과 관련없다" 는 결정을 내리면 고어는 생존투쟁을 계속할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

반면 주대법원의 '2차 판단' 을 연방대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어는 승복해야 한다.

두 가지 법정싸움 외에 고어가 상대해야 하는 또 하나의 전선은 바로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주의회다.

주의회는 12월 12일까지 선거인단이 확정되지 않으면 주의회에서 이를 선출토록 규정한 연방법 조항을 들어 부시 당선을 위한 특별회기 소집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어 진영은 12월 12일이라는 시한을 둘러싸고 법률가들 사이에 논란이 있음을 들어 선거인단 투표가 실시되는 12월 18일을 시한으로 고집할 태세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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