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산책] 프랑스인의 '관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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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톨레랑스(tolerance)' 의 나라 프랑스에서 톨레랑스 범위 논쟁이 한창이다.

'관용' 또는 '용인' 등으로 번역되는 톨레랑스는 남의 생각과 행동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보편적 윤리나 상식에 벗어난다고 해서 무조건 '잘못' 으로 매도하지 않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럴 수도 있다" 고 용인한다는 얘기다.

프랑스 사회가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크게 어긋나지 않고 굴러가는 것도 톨레랑스가 프랑스인들의 가치관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쟁은 프랑스 국영 TV방송인 '프랑스3' 의 한 토크쇼에서 비롯됐다.

'그것이 나의 선택(C' est mon choix)' 이라는 제목의 이 토크쇼는 특별한 사람들이 출연해 논쟁을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일부러 뚱보가 된 사람에서부터 나체주의자.동성연애자나 피가학성 변태 성욕자, 포르노 배우 등 다양한 출연자가 당당히 자신이 선택한 삶을 변호한다.

여기자 출신 에블린 토마가 진행하는 이 프로는 평균 시청률 26%로, 출범 1년 만에 6백만명 이상이 시청하는 프랑스3의 간판 토크쇼로 자리잡았다.

방송사는 매일 오후 1시50분부터 한시간 동안 방송하는 이 토크쇼의 주요 부분을 발췌, 황금시간대인 오후 8시20분부터 20분간 재방송한다.

그러자 국회의 방송예산 심의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국영방송의 저속성을 거론하면서 이 토크쇼를 지목하고 나섰다.

방송사측은 "허구가 아닌 엄연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 이라며 반발했다. 세골렌 루아얄 가족.아동 장관도 1일 "이 방송이 프랑스인들의 톨레랑스를 키워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 고 거들고 나섰다.

여론조사 결과는 응답자 85%가 "사람들간 사고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고 대답했을 정도로 방송사 편이다.

프랑스3측은 그러나 "주제 선정에 상업성이 엿보인다" 고 비판한 약 40%의 응답자를 의식, 주제를 보다 엄격히 고르고 내년부터 재방송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것 역시 또 다른 측면의 톨레랑스인 셈이다.

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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