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환영의 시시각각

아바타·아이패드의 기시감·미시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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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미 나와 있는 것을 재구성하는 능력도 창조력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나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주도해 개발한 태블릿 PC인 ‘아이패드(iPad)’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12월 개봉해 흥행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아바타’는 영화 제작의 틀을 뒤집을 영화로 인정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마이클 무어 감독도 극찬했다.

지난달 27일 발표된 아이패드의 경우 3월 출시 예정이라 아직 성패는 알 수 없다. 회의론도 있다. 하지만 아이패드가 전자기기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가 차츰 늘어나고 있다. 상당수 비평가들이 아바타의 실패를 예상했다. 그런데 아바타는 이제 ‘꼭 봐야 하는(must-see)’ 영화가 됐다. 아이패드도 ‘꼭 사야 하는(must-buy)’ 제품이 될지 주목된다.

영화·IT 시장에서 새로운 획을 긋고 있는 ‘아바타’와 아이패드도 새로운 게 아니다. 아바타는 인디언·베트남전·이라크전·자본주의·제국주의·환경주의, 가이아 이론, 아즈텍 멸망 등 다양한 모티브를 차용했다. 심지어 “아바타는 ‘늑대와 함께 춤을’과 같은 영화다”고 주장한 비평가도 있다.

‘창조성의 공장’으로 불리는 애플이 선보인 아이패드도 이미 나와 있는 기능들을 바탕으로 한다. 심지어 2002년 후지쓰가 출시한 유사 기기의 이름도 아이패드였다.

이미 있는 것을 모조리 보자기에 싼다고 소비자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구성이 문제다. 스티브 잡스와 제임스 캐머런의 비결은 뭘까. 두 사람의 천재성과 완벽주의,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캐머런은 80페이지 분량의 아바타 시나리오를 1995년에 완성하고 필요한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잡스는 10여 년 전부터 아이패드의 시제품을 주기적으로 개선해 왔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기시감과 미시감을 원용해 분석해 볼 수 있다. 미시감(未視感·jamais vu)은 ‘본 적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기시감(旣視感·déjà vu)은 ‘본 적이 없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기시감이 과도하면 따분하다. 미시감이 지나치면 생소함 때문에 오히려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 아바타나 아이패드에는 그런 과도함이 없다. 캐머런과 잡스는 기시감과 미시감을 절묘하게 혼합했다.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일수록, 세계사에 지식이 많을수록 아바타에 열광할 가능성이 크다. 아바타는 이미 본 것,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 같은 미시감을 선사한다. 다양한 모티브가 등장해 기억에 즐거운 자극을 주지만 최대한 단순화한 스토리라인 덕분에 패이스 캡처(face capture) 등 첨단 기법의 효과를 즐기느라 지루하게 모티브를 셀 여유가 없다. 또한 아바타를 처음 보는 관객도 언젠가 아바타를 본 것 같은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친숙한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패드의 경우에도 미시감·기시감이 적절히 배합됐다. 전자기기를 많이 구매하고 사용해본 소비자일수록 아이패드에 미시감을 느끼며 매료될 가능성이 크다. 멀리서 봐도 차별성 있는 애플의 디자인, 모든 기능을 다 구겨 넣지 않고 꼭 필요한 기능만 채용한 단순성이 미시감을 보장한다. 전자기기 환경에 노출된 소비자라면 기시감도 충분히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불교 수행 도중에 미시감·기시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잡스는 불교 신자다. 캐머런은 영화를 완성하고 “참선하는 상태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동양 종교·사상이 두 천재의 창조력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