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MBC는 여전히 환골탈태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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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어제 보도·제작·편성 본부장 등 MBC의 새 이사 후보 3명을 선임했다. 방문진과 다른 인사안(案)을 갖고 있던 엄기영 MBC 사장은 이에 반발해 사표를 제출했다. 겉으로만 보면 인사 갈등이 폭발한 모양새이나, 배경에 MBC라는 거대 지상파 방송의 위상과 정체성 문제가 깔려 있기에 사태의 추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MBC 이사진에 누가 들어가고 빠지는 지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국민의 재산인 공중파를 사용하는 MBC가 보도·교양·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공영성과 공익성을 제대로 구현하는지 여부가 관심거리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MBC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엄기영 사장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진작 느꼈어야 마땅했다. 왜곡·과장을 일삼아 어린 여중생들까지 패닉 상태에 빠뜨렸던 PD수첩 ‘광우병’편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도 반성하기는커녕 진행 중인 재판의 당사자격이면서 버젓이 “잘못한 게 없다”는 식의 후속 프로그램까지 제작해 내보냈다. 취재·보도에 필수적인 게이트키핑 기능을 상실했다는 사내·외 우려가 쏟아지는데도 자정(自淨)기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선진국 같으면 사장이나 제작 간부가 벌써 몇 번이고 자리를 내놓았어야 할 상황이었다.

엄 사장이 사표를 내자 MBC 노조는 “무자비하게 사장의 인사권이 유린당했다”며 “정권의 MBC 장악 음모를 막아내겠다”는 성명을 냈다. 노조는 지난해 12월 엄 사장이 재신임됐을 때는 “방문진의 하수인이자 정권의 나팔수”라며 ‘무자비하게’ 질타했었다. 그러니 사장이고 누구고 눈에 뵈지 않고 자신들의 입맛과 이념에만 충실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노영(勞營)방송’이란 지적이 달리 나왔겠는가. 정확성과 공정성을 누누이 강조한 자신들의 방송강령부터 잘 지킬 궁리는 왜 안 하는가.

MBC는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한다. 공영방송의 막중한 책임을 되새겨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데, 언제까지 갈등을 부채질하면서 자신들의 잘못까지 정권 탓으로 돌리는 구태를 답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