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제약 삼성전자’ 만들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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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이런 모습은 지금까지 국내 토종 제약사 대부분이 살아온 방식이다. 정부와 제약사 모두 안일하게 지내다 보니 870여 곳의 제약사 중 연간 매출이 1조원 넘는 곳은 없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7일 ‘제약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R&D 투자비의 20%까지 세액을 공제해준다는 게 골자다. 2008년 세계 의약품 시장은 7731억 달러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456억 달러)의 17배에 달한다. 이런 거대 시장을 놓칠 수 없어 정부가 각종 ‘당근’으로 제약사들의 R&D 투자를 유인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방안이 성공하려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서울의 한 약학대학 교수는 “연구비를 감독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1994~2007년 정부의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에 따라 여러 제약사들이 정부 연구비를 탔지만, 일부 제약사들은 이 돈으로 땅을 사고 건물 짓기에 바빴다. 제약업계 전문가는 “벌써부터 각사가 올해 연구개발비를 대폭 늘릴 것이란 얘기가 나돈다”고 말했다.

제약사들도 세액공제는 반기면서도 “제약업계의 구조적 문제가 리베이트에서 촉발된 만큼 리베이트를 준 업체와 받은 의사 모두 처벌한다는 쌍벌 규정을 명문화하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기회를 잘 살려서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제약사가 출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재우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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