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뒤흔든 화제작 '…맥도널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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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일본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 (다음달 2일 개봉)의 원제는 '라디오의 시간' 이다.

한국 수입사가 '라디오' 란 예스러운 단어 대신 패스트푸드 냄새가 푹푹 나는 제목으로 분위기를 1백80도 돌려놨다. 결과적으로 현명한 '개명' 으로 보인다.

1백분 가까운 상영시간 내내 관객의 배꼽을 잡게 하는 경쾌한 코미디이기 때문. 신세대 감각에 맞게 장면전환이 재빠르고 거듭되는 반전 또한 일품이다.

1980 년대 초반에 히트했던 팝 그룹 버글스의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 를 기억하는지? 영상문화의 회오리 속에서 퇴물로 취급받는 라디오의 비운을 애도했다.

그러나 '…맥도널드' 는 한물간 물건에 대한 비가가 아니다. 지금도 숱한 청취자를 웃기고 울리는 라디오의 생동감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맥도널드' 는 소시민의 일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섈 위 댄스' 와 공통점이 많다.

사회에서 다소 소외된 성인을 다루면서도 그들의 감춰진 슬픔을 유머.익살로 버무려내는 솜씨가 닮았다.

또 '으라차차 스모부' 같이 특정 소재를 충실하게 요리해 아기자기한 재미를 안겨주는 일본 코미디의 전형이다.

그런 한편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코미디 이론처럼 일상에서 뒤처진 사람을 묘사하되, 그 열등함을 고통스럽지 않게 그려낸다.

한번 웃고 나면 헛헛해지는 공허한 폭소 대신 가슴 속에 짙은 여운을 남기는 애잔함 같은 것. 연극연출로 기본기를 다진 미타니 코키(三谷辛喜) 감독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일단 등장인물이 잘 나가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한심한 처지를 한탄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드라마를 만드는 고참 PD, 왕년의 화려한 명성을 먹고 사는 공주병 스타, 드라마 공모에 처음으로 당선된 순박한 가정주부 등. 특별한 주연 없이 방송계의 많은 인물들이 멋진 앙상블을 빚어낸다.

영화는 매스미디어의 스타 시스템을 꼬집는다. 드라마 여주인공 이름이 자기와 사귀던 남자의 부인 이름과 같다며 꼬투리를 잡는 스타의 불평을 들어주기 시작하면서 드라마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된다. 그것도 생방송으로 나가는 드라마인데….

등장인물이 일본인에서 미국인으로 바뀌고, 드라마 배경도 일본의 한적한 어촌에서 뉴욕.시카고로 훌쩍 건너뛴다.

소박한 멜로물로 출발했던 원작이 누아르.법정드라마를 거쳐 결국은 SF로 변질한다.

영화는 이런 말도 안되는 얘기를 말이 되도록 긴박하게 끌고 간다. 라디오 스튜디오란 좁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돌발사건을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시나리오가 튼실하다.

사공(연출.출연진)이 많아 배(드라마)는 산으로 올라가는데, 영화는 관객의 발을 동동 구르게 하며 현실풍자란 땅에 든든한 뿌리를 내린다. 97년 일본영화 아카데미에서 작품.감독상 등 12개 부문을 석권했다.

영화평론가 김의찬씨는 "생동감 있는 캐릭터로 삶의 이면을 파고들며 일본 고유의 장르영화로 자리잡은 일본 코미디의 저력을 보여준다" 고 평했다.

'…맥도널드' 는 디지털 시대에 띄우는 아날로그에 대한 송가다.

"라디오엔 할리우드의 특수효과가 필요없어. 대본을 펼치면 그 자체가 우주야" 란 고참 PD의 대사처럼…. 그럼에도 단 몇초라도 웃기지 못하면 리모컨을 눌러대는 n세대를 끌어들이는 감각이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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