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사장 일주일 새 두 번 머리 숙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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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투수였다. 모두 그가 위기의 도요타를 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14년 만에 경영 전면에 나선 창업자 가문의 카리스마에 대한 기대였다. 일성은 “기본으로 돌아가자”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세계 1위’라는 자만심에 도취한 회사는 고객의 아우성을 듣지 못했다. 결국 전 세계에서 1000만여 대의 차를 리콜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구원투수가 만루 홈런을 맞은 것이다.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54·사진) 사장이 5일 고개를 숙였다. 격식을 갖춘 공식 사과로는 처음이지만, NHK 인터뷰에서 한 사과 발언을 포함하면 일주일 새 두 번째다. 오후 9시 나고야(名古屋) 본사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다. 그는 “대량 리콜로 고객에게 심려와 폐를 끼친 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프리우스 문제는) 가능한 한 빨리 대책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글로벌 품질특별위원회’ 설치도 약속했다.

그의 사과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가 “도요타가 신속히 대응해 조기에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 지 딱 하루 만의 일이다. 그동안 미 정부는 사장이 직접 나서라며 그를 압박했다. 온실 속에서 큰 화초라 뒤에 숨어있다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헐렁한 사람은 아니다. 설렁설렁 사장이 된 것도 아니다. 혹독한 수업을 견뎠다. 도요다 가문은 자녀들에게 기회는 준다.

그러나 성과가 없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는 1950년 경영이 나빠지자 전문경영인에게 자리를 내줬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취임 직후 “우리는 구세주에게 매달려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제 카레이스 자격증을 가진 그이지만, 그는 도요타의 세계 최고 경주 포뮬러원(F1) 참가를 중단시켰다.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창업자 가문의 리더십도, 개인의 각오도 십수 년 쌓인 도요타의 병을 치유하기 어려웠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생산한다는 ‘JIT(Just In Time)’ 방식은 미래를 보는 눈을 가렸다. 세계 1등을 위해 마구잡이로 늘린 생산 설비는 연간 1000만 대에 이르렀다. 적정 규모인 700만 대로 줄이려면 30만 대를 생산하는 공장 10개의 문을 닫아야 했다. 가뜩이나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인 미국에서 공장 폐쇄는 반(反) 도요타 감정의 씨앗을 키웠다. 와타나베 가쓰아키(渡邊捷昭) 전 사장이 남긴 짐은 그렇게 컸다. ‘와타나베의 저주’였다.

그도 이렇게까지 깊을 줄은 몰랐다. 그에게 떨어진 불은 과잉 상태인 생산을 감축하는 것이었다. 허둥대는 동안 숱하게 나온 고객의 쓴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일본 내 리콜에서 도요타 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1.4%였다. 2005년 이 비율은 34%였다. 적신호가 들어왔는데 보지 못한 셈이다.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일본 국토교통상도 5일 각료회의에서 “도요타는 고객의 시각이 결여돼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인의 장막도 생겼다. 그의 모교인 게이오대 출신들이 요직에 자리를 잡았다. 사장은 그이지만, 최종 결정은 도요다 쇼이치로(84) 명예회장이 하는 구조는 50대 젊은 사장의 기동력을 떨어뜨렸다.

굴욕도 겪었다. 그가 리콜 문제에 대한 첫 인터뷰를 한 곳은 다보스 포럼에서다. 그는 당시 아우디를 탔다. 포럼이 정한 배기가스 기준을 충족하는 도요타의 대형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환경도 그의 편은 아니었다. 엔화는 강세였고, 자동차 수요는 급속히 줄었다. 하이브리드 기술에서 앞섰지만, 마진이 적은 게 고민이었다. 섭섭한 마음이 있을 수도 있다. 미국 교통부는 ‘도요타가 리콜을 거부하다 자신들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했다’며 도요타를 궁지로 몰았다.

하지만 다시 모든 것은 그의 몫이다. 미 정부가 “아키오와 얘기하겠다”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가 나서야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가 그리 호락호락한 기업은 아니다. 사내 유보금만 3조 엔(39조원)이다.

지난해 6월 취임한 그는 첫 기자회견에서 “불황 속에서 사장이 된다는 건 맨 밑바닥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제 더 떨어질 바닥도 없다. 다행히 그는 창업자 가문의 일원이다. 위기에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입장이라는 얘기다. 구원투수 아키오의 진짜 임무는 지금부터다.

김영훈·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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