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우스 30만 대 리콜 … 일 정부 “신속 대응” 뒷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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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오른쪽)이 5일 일본 나고야(名古屋)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량 리콜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해 머리 숙여 사죄하고 있다. [나고야 로이터=뉴시스]

도요타자동차의 대량 리콜(회수 및 수리)에 대한 일본의 대응 방식이 확 바뀌는 모습이다. 일본 총리와 각료들이 신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가 하면, 5일 밤에는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이 긴급 회견을 자처해 공식 사과했다. 도요타의 차세대 핵심 동력 모델인 ‘프리우스’마저 대량 리콜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직후다.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 계속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5일 도요타가 일본 국토교통성과 미국 교통부에 프리우스의 리콜 신청서를 낼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대상은 지난해 5월부터 연말까지 생산된 프리우스다. 일본 17만6000여 대, 미국 10만 대 등 모두 30만여 대다. 모두 일본의 도요타 공장에서 생산돼 60여 개국에 수출된 것이다. 리콜된 차량은 전자 제동장치의 소프트웨어를 수정하는 수리를 받게 될 전망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프리우스의 리콜이 정식 결정되면 파장이 커진다. 도요타가 자랑하는 최고급 차종인 ‘렉서스’의 하이브리드 모델 ‘렉서스HS250h’도 리콜될 가능성이 있다. 같은 하이브리드 차인 사이(SAI)도 마찬가지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두 모델 다 프리우스와 같은 브레이크 장치와 소프트웨어를 쓰고 있다.

프리우스는 미끄러운 도로나 패인 땅에서 저속으로 주행할 때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현상을 보여왔다. 시속 20㎞로 주행할 경우 브레이크가 1초만 듣지 않아도 차는 5m 이상 진행한다. 전날 도요타는 “프리우스의 전자 제동장치 설계에 문제가 있다”며 결함을 시인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프리우스의 결함이 구조적 문제는 아니지만 매출과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도요타가 리콜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캠리에 대한 소비자 신고도 늘어나고 있다. 일본 교도(共同)통신에 따르면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에 2002~2006년형 캠리가 급가속 현상을 보인다는 여러 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이 모델은 미국에서 215만 대가 팔렸으며, 도요타가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태가 자꾸 악화되자 일본 정부도 뒤늦게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무상은 5일 도요타의 리콜에 대해 “일본 자동차업계와 제품에 대한 신뢰감의 문제이기 때문에 외교적으로도 확실히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각료들 사이에서도 도요타의 늑장 대응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한편 도요다 사장은 전날 레이 러후드 미국 교통장관과 전화 통화를 하고 “안전 대책을 최우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보좌진으로부터 도요타 관련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도요타는 가속페달 문제로 리콜됐던 8개 차종과 달리 프리우스의 미국 판매는 중단하지 않을 계획이다.

도요타에 대한 소송도 쏟아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도요타가 미국과 캐나다에서 적어도 29건의 집단소송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부분 도요타가 문제를 알고도 은폐하거나, 늑장 대응을 했다는 이유에서 제기된 소송이다. 미국의 소비자운동가 랠프 네이더는 “도요타가 꼴 사나운 은폐를 했다”고 지적했다.

김영훈 기자

◆하이브리드 차=두 가지 동력원을 함께 쓰는 차를 말한다. 가솔린 엔진과 전기 모터를 같이 쓰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이브리드(hybrid)는 잡종·혼혈이란 뜻이다. 기존 자동차에 비해 연비가 좋고, 오염물질이 덜 나와 친환경 자동차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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