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정상화] 이회창총재 "오늘 일 저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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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러분, 제가 오늘 일을 저질렀습니다. 며칠 동안 고뇌했습니다."

24일 오후 한나라당 의원들이 모인 국회 본청 의원총회장.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조건없는 국회 정상화' 를 선언한 오전 기자회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李총재는 "이번 기회에 정권의 못된 버릇을 고쳐놔야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런 집권당을 흔들어 우리가 얻을 반사이익이 무엇일지 생각해야 한다" 며 "정권을 보지 않고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를 하기 위해 이런 결단을 내렸다" 고 강조했다.

그는 "(국회에 들어가지 않아도)우리 당이 명분과 정의는 있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뒷짐만 지면서 조성해 놓은 정치 진공상태를 야당이 채울 수밖에 없다" 고 덧붙였다.

개인 발언을 허용치 않은 의총은 20분 만에 끝났다. 李총재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주진우(朱鎭旴)비서실장은 "주가가 10포인트 뛰었다고 합니다. '이회창 주가' 라는 얘기가 나온답니다" 고 보고했다.

총재실 관계자들은 李총재가 국회 정상화를 주도한 것을 계기로 야당 지도자에서 정쟁(政爭)에 초연한 '큰 정치인' 의 모습으로 국민 앞에 다가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위 당직자는 "최근 김대중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과 함께 李총재의 지지도도 떨어지고 있는 현상이 李총재에게 보고됐다" 고 전하고 "경제위기 타개에 협조하지 않으면 여야가 공멸(共滅)한다는 위기의식이 李총재의 선택 배경" 이라고 말했다.

한빛은행.정현준 게이트로 잡은 정국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이런 극적 반전이 필요했다는 설명도 나왔다.

李총재의 측근은 "공적자금 국회 통과의 열쇠를 쥔 李총재가 당내 반발만 의식해 이를 풀어주는 타이밍을 놓치면 다시 주도권을 잃을 것" 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것.

특히 李총재는 국정을 책임지는 '차기 대권' 주자의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게 총재실의 주장이다. "金대통령이 제안하는 영수회담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는 자신감이 李총재 주변에 배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위 관계자는 "정치 공세와 민생을 분리하는 결단의 이미지가 국민에게 심어질 것 "이라고 기대했다.

李총재측은 "경제위기는 金대통령과 함께 헤쳐 나가되, 정치적 실정(失政)은 철저하게 추궁하는 노선을 걸을 것" 이라고 말했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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