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장충단 문화단지'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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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세계적인 문화단지가 될 수 있을 여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도시구역이 서울 한 가운데 있다.

*** 당대 최고 공간들 밀집

6백년 역사도시 서울의 자연과 옛 도성이 제대로 남은 곳이 장충단 일대다. 장충단공원은 서울 최초의 도시공원이었고 장충체육관은 한때 서울 최고의 문화체육 공간이었다.

장충단공원 위에는 한국 공연예술의 메카인 국립극장이 있다. 냉전시대의 기념비적 공간이던 자유센터는 한때 가장 중요한 서울의 국제공간이기도 했다.

옛 도성 성벽 옆에 국가의 영빈관으로 시작된 신라호텔과 타워호텔은 서울에 온 세계인들에게 서울의 역사와 지리를 보이고자 만든 호텔이다. 세계적 불교대학으로 시작한 동국대도 거기에 있다.

이런 당대 최고의 공간들이 밀집해 있으면서도 각자 자기의 기능만을 수행할 뿐 서로가 모인 도시적 집합효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만한 입지와 공간 규모면 세계적 문화단지가 될 수 있는 어번스케일이다.

지하철이 바로 앞에 닿아 있고 서울의 주요한 가로가 사방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남북 강변도로에서의 세 접근로가 바로 이 곳을 지나고 사대문 안의 네 주요 가로가 만나는 동대문 일대의 흐름이 지척에 닿아 있다.

장충체육관을 다목적 문화회관으로 재구성하고 자유센터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이전해 국립극장과 함께 강북의 새로운 예술 중심으로 만든다.

장충단공원을 시민의 문화마당으로 확대해 문화단지의 중심 광장으로 만들면서 동국대를 포함한 장충단 일대를 인공토지의 보행공간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문화공간군으로 집합할 수 있으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던 도시구역을 최고의 문화단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때 슬럼화해 도심 속에 버려진 지역으로 방치됐던 타임스스퀘어가 연간 1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뉴욕의 상징구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타임스스퀘어가 가진 도시적 가능성을 극대화한 뉴욕시 정부의 현명한 개입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로열페스티벌홀.국립극장.셸본사 등이 모여 있으면서도 살아 있는 도시의 실질적 문화구역이지 못하던 사우스뱅크를 테이트갤러리의 개관을 전후해 런던 최고의 문화단지로 만든 것 역시 이러한 기존 문화공간의 상호연대를 통한 도시구역의 재창출이었던 것이다.

작은 정부가 큰 정부보다 더 강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정부는 가능성에 힘을 싣는 일을 해야 한다. 시장원리와 공적 개입의 조화는 이런 시장기능의 조직화에 그 시작이 있는 것이다.

장충단문화단지는 정부에 의한 최소한의 개입으로 충분히 경쟁력있는 문화단지가 될 수 있다. 장충단 일대의 가로체계를 재조정, 단지와 공공교통 사이의 연계장치를 확보하고 종로.을지로.퇴계로와 남북 강변도로를 잇는 네트워크를 재조직해 장충단 일대를 일단의 문화단지로 만드는 도시개입이 이뤄지면 동대문시장.동대문운동장과 어울려 세계적 문화단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조금만 손보면 名所 탈바꿈

기존의 문화공간군을 집합해 이를 어번인프라와 접속, 도시의 문화인프라로 만드는 일에는 정부 차원의 개입이 필요한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일보다 기왕 이루어진 일을 재조직해 더 큰 일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도시의 부활인 것이다.

장충단문화단지가 남산국립공원과 동대문시장을 잇는 문화인프라가 될 수 있으면 아마도 서울의 가장 볼 만한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6백년 서울의 기억장치가 살아 있는 서울성벽과 동대문 사이에 도시적 삶의 가치를 담당하는 문화인프라로 장충단 일대를 만들 수 있으면 서울시와 중구가 참으로 큰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에 정치가가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김석철 <건축가. 베네치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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