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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문화유산을 찾아] 4. 천도교 중앙대교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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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서울 종로구 경운동의 천도교 중앙대교당(서울시 지정문화재 36호). 1918년 12월 공사에 착수해 1921년 완공한 대교당은 1919년 3.1운동 준비를 위해 지어진 곳. 또 소파 방정환선생이 어린이운동을 펴나간 곳이기도 하다.

대교당은 들어설 당시만 해도 구 중앙청.명동성당과 함께 서울의 3대명물로 꼽혔지만 지금은 바로 옆 15층짜리 수운회관에 가려 큰 길에서는 잘 눈에 띄지 않게 됐다. 전형적인 바로크양식의 건물로, 4층 규모의 돔은 얼핏 교회를 연상시킨다.

건물 내부는 2백12평 규모의 홀. 기둥이 없어서 그런지 훨씬 넓어보인다. 흰색의 콘크리트 천정에는 일정간격으로 배달민족을 상징하는 박달나무 꽃잎무늬가 새겨져 있다.

비록 일제시대 일본인과 중국인이 각각 설계와 시공을 한 건물이지만 민족의 혼을 담으려는 천도교도들의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다.

대교당은 천도교 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선생(1861~1922)이 3.1운동 거사모금을 위해 세운 건물이다.

일본총독부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기 위해 막대한 자금이 드는 건설사업을 병행한 것.

의암선생은 18년 4월5일 교당건립을 선포하고, 같은해 12월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자금은 전국 교인들의 성금으로 충당했는데, 당시 한 가구당 10원(현 통화가치 약 13만원)이상을 거출하라는 종령을 선포했다.

총 모금액 1백만원 중 공사비 30만원을 제외하고는 전액 3.1운동 거사자금으로 사용됐다.

당초 설계도는 지금의 두배 크기였지만 일제는 건물에 기둥이 없어 위험하다는 이유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아 축소수정됐다.

방정환 선생(1899~1931)이 어린이날을 선포했던 곳도 바로 여기다.

의암선생의 셋째사위인 방정환선생은 홀대받던 아이들에게 '어린이' 라는 이름을 붙이고 23년 5월1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했다.

방정환 선생의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소년이 소변이 마려웠지만 자리를 떠나기 싫어 신고 있던 고무신에 오줌을 받아냈다는 일화가 생긴 장소도 바로 이곳 대교당이다. 지금은 매주 일요일 열리는 시일식(侍日式)과 각종 행사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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