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티보가의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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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가 프랑스다.

올해 수상자인 가오싱젠(高行健)은 중국 망명작가 출신이지만 프랑스 국적을 갖고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1964년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수상을 거부한 장 폴 사르트르에 가오싱젠을 더하면 모두 13명의 프랑스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았거나 받게 된다.

2차세계대전 전후 약 30년은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황금기였다. 27년 철학자 출신인 앙리 베르그송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프랑스는 10년마다 수상자를 배출한다.

37년에는 로제 마르탱 뒤 가르, 47년에는 앙드레 지드, 57년에는 알베르 카뮈가 상을 받았다.

물론 프랑수아 모리아크(52년)같이 그 중간에 상을 받은 작가도 있다. 이들 가운데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프랑스 내에서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뒤 가르다.

뒤 가르는 대화소설.콜라주 기법.영화소설 등 동시대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학적 실험을 통해 소설미학의 극단을 추구했으나 '앙가주망(현실참여)' 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이유로 후세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찬밥' 신세였다.

그는 시류를 거부하고 오로지 차가운 이성(理性)의 객관성으로 세상을 보았다. 20년에 걸친 그러한 천착의 결과가 연작소설 '티보가(家)의 사람들' 이다.

1920년 집필에 들어가 총 8부작으로 40년에 완성됐다. 방대한 분량의 '티보가의 사람들' 이 우리말로 완역돼 나왔다는 소식이다.

한 원로 불문학자의 20년에 걸친 '책상지킴' 의 결과라고 한다. "프랑스어 표현을 우리말로 옮기는 데는 이골이 났지만 번역을 완성하고 난 뒤의 기분은 말로 옮기지 못하겠다" 는 그의 감회가 인상적이다.

19세기 프랑스 작가였던 오노레 드 발자크는 초저녁엔 잠을 자고 남들이 잠잘 때 글을 썼다. 평생을 쫓아다닌 빚쟁이들을 비롯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가 그의 집필시간이었다.

낮시간에도 책상을 지키며 교정쇄를 난도질했다. 멀리 애인을 만나러 가서도 지킨 원칙이었다. 20년 만에 그가 74편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총 97편으로 구성된 '인간희극' 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강철 같은 의지력의 소산이었다.

"최소한 5시간 동안 꼼짝 않고 책상머리에 붙어 있을 수 있는 의지력 없이는 글 쓸 생각을 하지 말라. " '한국의 가오싱젠' 을 꿈꾸는 한 중견작가가 작가 지망생들에게 주는 충고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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