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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파병을 보는 정세균 대표의 두 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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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003년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정대철 대표와 정세균 정책위의장은 이렇게 한숨 쉬었다고 한다. 파병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과반수를 넘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두 사람은 전화통을 붙잡고 한 사람 한 사람씩 설득에 들어갔다. “의원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집권당 의원으로 책임의식을 갖고, 국익을 생각합시다.”

두 사람의 간절한 호소에 강경했던 의원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파병안은 무난히 국회를 통과했다. 한국은 미국·영국에 이어 셋째로 많은 3000여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해 현지 재건에 기여했고, 우리의 국격도 크게 높이는 성과를 올렸다.

그 정세균 정책위의장이 당대표가 돼 이끌고 있는 지금의 민주당은 이번 달 국회에 상정될 아프가니스탄 파병안을 반대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 파병 당시 정 대표가 보여준 성숙한 모습을 기억하는 기자는 이런 목소리에 정 대표의 진심이 실려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 대표는 국익을 아는 정치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낼 당시 원전 기술 수출에 힘을 쏟았던 정 대표는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에서 원전 400억 달러어치를 수주하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원전 수출은 녹색성장 시대에 맞지 않는 공해적 발상”이란 진보진영의 트집도 “우리가 세계적으로 큰 우위를 확보한 기술과 인력을 왜 사장(死藏)시키려 하나”라고 일축하는 용기도 보여줬다. 이런 정 대표인 만큼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각료나 장성을 지냈던 다른 민주당 중진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내심으론 파병의 필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몹시 어렵다. 집권 1년 만에 지지율은 반 토막 났고, 민주당의 아성인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38년 만에 참패했다. 지지층은 그의 정책이 생각만큼 진보적이지 못하다고 불만이고, 공화당 지지자들은 때를 만난 듯 국내 정치부터 외교까지 모든 현안에서 몰매를 때리고 있다. 묘한 건 우리 민주당이다. 북한 문제를 놓고 이명박 정부를 맹공하면서 오바마에 대해선 “곧 평양과 대화에 나설 것”이라며 치켜세운다. 그러나 정작 오바마가 한국에 절실히 바라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파병엔 반대한다. 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혀 파병에 차질이 생긴다면 오바마는 “미·일동맹과 대중관계를 매끄럽게 다루지 못하더니 한·미동맹까지 파탄 냈다”는 공화당의 공격에 시달려 정치적으로 더 큰 곤경에 빠질 수 있다. 그건 우리 민주당에도 이롭지 못한 일이다.

민주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장병들의 안전이 우려되고 국민정서가 부정적이란 이유를 든다. 그러나 이라크전 때도 장병들 안전과 국민의 반대는 크나큰 시빗거리였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는 파병이 가져다줄 국익을 먼저 생각했다. 그 바탕 위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주둔지를 찾아내고,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파병을 성사시켰다. 그런 노무현 정부를 잇는 민주당이라면, 장병들의 안전이나 국민의 반대는 노력해서 해결책을 찾을 문제이지, 파병 자체를 거부하는 명분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