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곡미술관서 '나는 작가가 아니다' 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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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이 사람들은 작가가 아니다. 아마추어이거나 기술자다. 그러나 소위 현대미술이란 것은 그들도 할 수 있다. 여기 작품들을 보라' .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지난 17일 시작한 '나는 작가가 아니다' 전은 현대 미술에 대한 통렬한 야유와 도전이다(내년 1월 20일까지).

전시 참가자는 영상물 제작자.기계설계 전문가.조형물 제작자.CF 감독.애니메이터.생활사 자료 수집가.산부인과 의사 등 다양하다.

공통점은 기성 작가가 아니라는 점. 하지만 화랑을 빌려 하는 아마추어의 행사가 아니다. 성곡미술관이 개관 5주년 기념전으로 마련한 정규전시다.

미술관측의 기획 의도는 이렇다. '현대 미술은 예술적 방향감각.사상성.심미안 등을 결여한 채 표류하고 있다. 새로운 매체를 통해 반짝하는 재치나 아이디어를 나타내는 정도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매체를 다루는 전문성과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현대미술의 표현이 가능할 것 아닌가' .

MBC 컴퓨터그래픽팀은 시드니 올림픽 때 선수들의 얼굴표정을 확대.흑백전환한 작품을 내놨다. 첨단 미술이 이만한 감동을 안겨줄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현대 한국음악가 임동창씨는 붓으로 한지 창문을 긁는 퍼포먼스를 통해 소리조각을 선보이며 미술작가로 나섰다. 요즘 유행하는 소리조각이 별거냐는 야유다.

애니메이터 이용규씨는 입체 캐릭터가 영화배우 송강호의 대사 '무데뽀 정신, 이게 필요하다' 를 연설하는 그래픽 작품을 보여준다.

'관객의 관심은 여기에 더 끌릴 걸' 이라는 주장이다.

조형물 제작업자 황남규씨는 양철로 조립한 서태지의 대형 얼굴상 '울트라메니아' 를 통해 소위 '오브제 조각' 이 별거냐고 묻고 있다.

이밖에 생활사 자료수집가 최웅규씨는 고흐의 대표작 '화실 풍경' 을 실물로 재현한 방을 꾸몄고 현직 의사인 김석배씨는 사진 콜라주 작업을 출품했다.

윤상진 큐레이터는 "표류하고 있는 소위 첨단 미술과 작가들의 허상을 매체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의 작업을 통해 드러내면서 미술의 진정한 가치를 캐물어본 기획" 이라며 "이같은 전시 취지에 동의한 사람들이 전문기술과 아이디어를 결합해 작품들을 내놨다" 고 설명했다.

02-737-7650.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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