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하병준] 오십보백보

중앙일보

입력

맹자孟子와 양혜왕梁惠王과의 대화 중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 이야기가 있다.
전쟁 중에 오십보 도망간 병사가 백보 도망간 병사의 비겁함을 비웃는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요즘 국제 자동차 시장에서 "Over the Top" 도요타(Toyota)가 처한 상황이 "오십보소백보"인 것 같아서이다.
리먼 사태를 시작으로 유발된 금융위기의 폭풍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며 눈물을 머금고 글로벌 Top 브랜드의 왕좌를 도요타가 GM에게 넘겨받은 것은 불과 재작년(2008년 하순). 이제 겨우 1년 반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당시 방만한 경영과 품질에 신경을 전혀 쓰지 못한 GM과 포드, 크라이슬러 빅3를 비웃던 도요타가 이제는 되려 같은 꼴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않을 수 없다.
물론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 사태가 처음 있는 일이고 그동안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JIT시스템(Just-In-Time, 적기생산시스템)"으로 대표되는 도요타식 경영모델 “가이젠(改善)"으로 끝모를데 없는 성장을 거듭해 왔기에 오랜 시간 문제가 적체되어 막판에 고름이 터진 빅3와 다르게 봐야한다고 할 수 있지만 최전성기의 제국이 몰락하는 것은 항상 사소한 방심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결코 단순히 볼 수 없다는 관측이 많다.

예기(禮記)의 경해(經解)편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 있다.

差之毫厘,謬以千里。(차지호리, 류이천리)
천리 둑도 조그마한 개미 구멍 하나에 무너진다

보도에 따르면 도요타는 이미 작년 8월 경부터 유럽 및 미주지역 생산 차량에서 브레이크 결함이 발견되었으나 시장 확대 정책에 의해 사소한 개별 문제로 치부되며 무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올 1월 들어 미주 지역을 시작으로 고급차종인 캠리를 비롯 각종 차량에서 대규모 리콜사태가 벌어지면서 뒤늦게 수습에 나서게 되었다. 개미구멍이 커지면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수습하기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형국이다.

얼마전 모 방송에서 두산 박용성 회장을 인터뷰했을 때 그가 했던 말은 리더라면 한번 깊이 음미하고 명심해야 하는 경구警句가 아닌가 한다.

"자신이 리더(여기서는 선두업체라고 의역하고 보도록 하자)가 되면 아래(후발업체로 의역하자)에 있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 절대 전철을 밟지 않을 것 같죠? 일단 한번 해보세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막상 리더(선두업체)가 되면 시스템이 딱 방심하게 좋게 되어 있어요"(인터뷰 내용이 토씨 하나 안 틀린 건 아니지만 핵심 내용은 이랬다)

그래서 중국 선인들도 시경(詩經), 진서(晉書), 순자(荀子), 전국책(戰國策) 등 여러 책에서 후세인들에게 당부의 글을 남기지 않았던가?

殷鑒不遠,在夏后之世。《詩經·大雅》은감불원, 재하후지세
은나라 사람이라면 하나라 멸망의 교훈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前車之覆,后車之鑒。《荀子》·《晉書》전차지복, 후차지감
앞 수레가 남기 바퀴자국이 뒷 수레에게 길이 될 것이다.

前事不忘,后事之師。《戰國策》전사불망, 후사지사
앞선 일이 남긴 교훈을 잊지 않아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

불과 1년 전 빅3가 남긴 교훈을 도요타가 과연 그대로 반복하면서 나폴레옹의 100일 천하처럼 왕좌에서 물러날 것인지?

빅3를 비롯한 2위권 업체와 도요타와의 자동차 대전 2라운드의 막이 열리고 있다.

하병준 중국어 통번역, 강의 프리랜서 bjha7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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