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행복한 방과후 학교 만든다면서 잿밥부터 챙기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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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검찰이 어제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민간업체를 선정하면서 금품을 받은 전·현직 교장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방과후 학교는 사교육 수요를 학교 안으로 끌어들여 사교육비를 경감(輕減)하고 공교육을 보완하려는 취지에서 운영되는 제도다. 당연히 학생 수요에 맞춤한 값싸고 질 좋은 프로그램 공급이 제도 성공의 관건이다. 그런데 그 책임자인 교장이 본분을 다하기는커녕 이를 이용해 잿밥이나 챙기는 추한 꼴을 보인 것이다. 학생들 보기가 민망하기 짝이 없다.

이번 일은 현재의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 선정 시스템의 결함이 빚은 필연적 결과라는 점에서 근본적 개선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친다고는 하나 사실상 프로그램 선정 권한을 교장이 쥐고 있는 것부터가 문제다. 학운위 심의 기능을 강화해 여기서 합의된 프로그램이 선정되도록 해야 불미스러운 잡음을 피할 수 있다. 업체가 개별 학교를 대상으로 직접 ‘선정 영업’을 하는 관행도 비리의 소지를 안고 있다. 업체 간 경쟁으로 리베이트가 오갈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차제에 학교와 업체가 1대1로 프로그램 계약을 하는 것을 막고, 공개적으로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시·도교육청이 민간업체가 제공할 프로그램을 사전에 등록받아 품질을 인증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분야별 콘텐트의 질과 가격, 강사의 자질, 학습관리 방식 등을 심사해 요건을 충족한 프로그램에 한해 학교에 추천하는 것이다. 교사·학부모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한 자리에서 비교·평가한 뒤 공개 선택할 수 있는 박람회를 정기적으로 여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다.

비영리단체나 공공기관의 참여로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 공급을 다변화(多邊化)하는 것도 긴요하다. 서울시가 최근 SK그룹·여성인력개발기관과 손잡고 만든 사회적 기업 ‘행복한 학교’를 통해 학습돌봄 서비스·현장체험활동 등 세분화된 프로그램 공급에 나선 게 좋은 예다. 학생·학부모의 요구에 부응하는 풍성한 프로그램이 공정한 절차를 거쳐 운영될 때에만 ‘방과후가 행복한 학교’가 현실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