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창의력올림픽] 금상 받은 성남 낙생고 레지스탕스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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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창의력올림픽에 출전한 레지스탕스팀이 음식법정을 주제로 한 연극을 공연하고 있다. [김진원 기자]

지난달 30~31일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한국창의력올림픽(Odyssey of the mind)이 열렸다. 총 127개 팀이 참가한 이 대회에 성남 낙생고 학생 7명으로 이뤄진 레지스탕스팀도 함께했다. 금상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미국 주최) 본선 진출권을 노리는 이들을 따라 대회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글=김지혁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지난달 30일 오전 6시20분. 팀장인 백규현(2년)군이 얼굴 분간도 힘든 어둠 속에서 팀원 출석체크를 한다. “임영민, 강명관, 장환혁, 이수정(이상 1년), 황인준, 김수렬(이상 2년). 김수렬! 수렬이 어디 갔어?” 지난 대회 고등부 금상을 수상했던 낙생고는 이번 대회에 총 3개 팀을 출전시켰다. 연극 발표회 형식으로 진행되는 터라 각종 무대장치와 소품들은 전날 미리 트럭에 실어 보내고 참가자들은 당일 오전에 함께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평소 농담 주고받기를 좋아하던 수렬이가 대답을 놓쳤다. 대회에 처음 참가하는 후배들의 긴장을 풀어 주고 싶어 평소보다 더 큰 소리로 떠들고 있던 탓이다.

일정을 확인한 서재흥 지도교사는 “레지스탕스의 일정이 좀 힘들게 됐다”고 전했다. 총 5개 테마로 나뉜 도전 과제 중 레지스탕스가 참여한 5과제에 고등부 팀들이 몰렸다는 것. 게다가 자발성 과제까지 모두 하루에 몰려 있는 버거운 일정이었다. 자발성 과제는 즉석에서 문제를 내 정해진 시간 내에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1개월의 준비기간이 주어지는 도전 과제와 달리 순발력을 요하는 이 과제는 부담이 큰 편이다. 팀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규현이가 나섰다. “지난해에도 자발성 과제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금상을 탔잖아. 오히려 힘든 거 먼저 해치우는 게 좋아.”

레지스탕스팀 학생들. 왼쪽부터 강명관·장환혁·임영민군, 이수정양, 백규현·김수렬군. [김진원 기자]

개회식이 끝난 후 자발성 과제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30분. 대책회의가 시작됐다. 5명만 참여해야 하는 자발성 과제는 말로 풀어가는 언어자발성, 주어진 재료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직접자발성, 두 유형이 혼합된 언어직접자발성 과제가 무작위로 주어진다. 규현이는 “언어가 걸리면 인준이와 환혁이가 빠지고, 직접 자발성이나 언어직접자발성이 걸리면 수정이와 환혁이가 빠진다”며 “언어는 내가 먼저 발표하고 영민이, 수정이, 명관이, 수렬이 순으로 발표하자”고 순서를 정했다. 지난 대회에 참가했던 형에게서 노하우를 전수받은 영민이가 끼어들었다. “직접자발성 때도 많이 떠들어야 한대. 옆에 있는 사람에게 계속 말해 가며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데.”

레지스탕스는 직접자발성 과제를 받았다. 5분 안에 두 책상 사이에 다리를 만들고 물건을 많이 올려놓는 과제였다. 못·나무막대기·종이컵·고무줄·탁구공·동전 몇 개 등이 비닐봉투에 담겨 있었다. 비닐봉투를 활용해 다리를 만들어야겠는데 아무리 봐도 길이가 모자랐다. 책상을 움직이지 못하는 조건에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남은 시간은 1분, 갑자기 인준이가 비닐봉투를 찢어 두 책상 위에 얹었다. 딱 맞아 떨어지는 길이다. 팀원들은 부리나케 다리가 끌려 떨어지지 않도록 양쪽 끝을 무거운 물건으로 고정하고 가벼운 물건을 다리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성공이다. 올려진 물건 개수와 다리가 밑으로 많이 처진 정도에 따라 가산점이 붙는 이 과제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다.

도전 과제까지 2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런데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계단으로 올라서는 무대라 준비한 수레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여기에 맞춰 급히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짧지만 집중력을 발휘해 연습한 끝에 무대에 올랐다. 음향을 맡은 수렬이의 얼굴이 갑자기 새파래진다. 스피커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임기응변으로 스피커 연결선을 뽑아내고 노트북에 내장되어 있는 스피커 소리로 연극 ‘음식법정’이 시작됐다. 참가자들이 각자 음식으로 분장하고 서로 대립 구도를 만들어 배심원의 판결을 이끌어 내야 했다. 레지스탕스는 체내에서 만난 삼겹살과 샐러드의 대립을 그렸다. 명관이와 환혁이는 “삼겹살이 오히려 체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설정했다”며 “샐러드의 나쁜 점을 부각해 삼겹살이 재판에서 이기지만 결론은 편식하지 말기”라고 내용을 설명했다.

다음날 오후6시, 모든 일정이 끝나고 시상식이 열렸다. 무대 위 아나운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금상 수상자 이름은 레지스탕스였다. “엄마! 1등 했어! 이제 미국이다!” 대회를 주관한 한국창의력교육협회 황욱 회장은 “상식을 깨뜨린 연극 주제와 팀원들의 창의성·협동심, 무대장치 등 전 분야에서 골고루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창의력올림픽= 매년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의 예선전이다. 총 5개(자연과학·항공공학·고고학·문화·음식) 도전 과제에 맞춘 연극과 즉석에서 주어지는 자발성 과제로 경연을 벌인다. 올해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대회엔 총 127(초 25, 중 22, 고 79, 중국 1)개 팀이 참가, 과제별로 초·중·고 3개 팀씩 모두 45개 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www.odysseyofthemin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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