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주 수작업 거부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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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플로리다주의 재검표를 둘러싼 공화당 조지 W 부시와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간의 갈등이 갈수록 악화돼 충돌 일보 직전이다.

팜비치 선관위는 12일(이하 현지시간) 새벽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전체 투표지의 약 1%를 무작위 추출해 손으로 확인작업을 했더니 기계로 검표할 때와 결과가 또 달랐다" 며 "기계검표의 문제가 드러난 이상 손으로 재검표를 다시 해야 한다" 고 발표했다.

당시 선관위원은 3명이었는데 이중 민주당 출신 선관위원 2명이 이를 요구해 결국 2대1로 관철됐다.

이에 따라 팜비치 등 4개 선거구에서 기계 대신 사람이 직접 확인하는 재검표 작업이 시작됐는데 이 경우 고어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으로 관측됐었다.

한데 13일 오전엔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다.

공화당 소속이고 선거과정 전체를 관장하는 플로리다주 캐서린 해리스 내무장관이 "14일 오후 5시까지의 개표결과만 인정한다" 고 선언한 것이다.

플로리다의 주법은 해외부재자 투표는 오는 17일까지 도착하면 유효표로 인정하지만 나머지는 14일까지 결과를 발표하도록 돼 있다. 해리스 장관은 이같은 주법을 그대로 적용시키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명분일 뿐 결국은 민주당측이 주도해 벌이고 있는 수작업 재검표를 못하게 하겠다는 게 해리스 장관의 속마음이다.

민주당측이 문제를 삼고 있고, 현재 수작업 재검표가 진행되고 있는 선거구는 4곳인데 14일까지는 그중 3군데가 재검표를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측은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플로리다주에 파견된 고어 진영의 워런 크리스토퍼 전 국무장관은 "공화당 소속 플로리다 내무장관이 정치적으로 결정한 것이며 매우 자의적이고 불합리하다" 고 반발했다.

이제 플로리다주의 재검표 작업은 너무나 복잡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다.

우선 공화당의 부시측이 수작업 재검표를 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금지요청에 대한 연방법원의 심리가 13일 오전부터 시작된다.

만일 연방판사가 "재검표를 해도 된다" 고 결정할 경우 플로리다주 해리스 내무장관이 "14일 오후 5시 이후 재검표 결과는 안받아들인다" 고 발표한 것과 모순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민주당측에선 해리스 장관의 발표를 정략적인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민주당과 공화당은 서로 소송에 맞소송을 거듭하면서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미국 언론들은 그동안 고어와 부시 후보에게 "선거 결과에 대해 소송으로 가면 미국의 헌정질서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며 자제를 촉구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양 후보측은 대립이 격화될 뿐이다.

게다가 이렇게 되면 재검표가 플로리다뿐 아니라 박빙으로 승부가 갈린 뉴멕시코.위스콘신.아이오와.오리건 등에서 줄줄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미 전역은 대 혼란에 휩싸일 것이고 오는 12월 18일에 치르도록 돼 있는 선거인단 선거는 물론 빌 클린턴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1월 20일까지 과연 새 대통령이 뽑힐지도 의문이 되는 상황이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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