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 내분 심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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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일본 집권 자민당이 뒤숭숭하다. 당내 2위인 가토(加藤)파 회장이자 비주류 좌장격인 가토 고이치(加藤紘一)전 간사장이 '내각 타도' 의 칼을 빼들었기 때문이다.

가토는 9일 야당이 이달 말 모리 요시로(森喜朗)내각의 불신임안을 제출하면 동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회 표결 때 결석하든지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것이었다.

10%대로 내려앉은 모리 내각의 지지율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야당의 내각 불신임안을 방패로 삼은 쿠데타 선언이었다.

실패하면 정치 생명이 위험한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가토는 파벌 결속에 나섰고, 같은 비주류의 야마사키(山崎)파는 가토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시모토(橋本), 모리,에토.가메이(江藤.龜井)등 주류 3파의 충격은 컸다.

지난달 여성 스캔들로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관방장관이 물러나면서 모리 퇴진론을 잠재웠다고 본 그들에게 가토 반란은 날벼락이었다.

주류 3파는 일단 모리 지지를 선언했다. 이달 말의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내년 초의 중앙부처 개편을 앞두고 당권 투쟁을 벌일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리에 등을 돌린 의원들이 적지 않아 주류파는 불안한 모습이다. 10일에는 모리의 퇴진을 주장해온 와타나베 요시미(渡邊喜美)의원이 에토.가메이파를 이탈했다.

야당은 가토의 반기를 계기로 자민당 분열과 정계개편을 꾀하는 눈치다. 간 나오토(菅直人)민주당 간사장은 가토가 탈당하면 총리 지명 투표에서 그를 밀 수 있다고 밝혔다.

향후 시나리오는 크게 네가지다. 우선 야당의 불신임안 제출 전에 주류파가 똘똘 뭉쳐 가토.야마사키를 분열시키고 모리 내각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 불신임안 제출 전에 주류파에서 이탈의원이 나오고 가토.야마사키파 봉쇄가 실패하면 주류파가 총재 선거를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가토가 총재에 당선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소수파벌을 이끄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외상이나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전 외상의 가능성이 있다.

셋째는 불신임안 투표까지 가서 불신임안이 부결되는 경우다. 모리 체제는 지속되겠지만 가토.야마사키파의 정권 비판이 계속돼 정국은 혼란상태가 지속된다.

넷째는 불신임안이 통과되는 것이다. 주류파는 이때 내각 총사퇴가 아닌 중의원 해산 및 총선을 택하겠다는 입장이다. 가토.야마사키는 총선 전 탈당해 신당을 결성하고 선거 후 야당과 연대할 가능성이 크다.

1993년 비(非)자민 연립정권 탄생과정이 되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가토의 반란은 일본 정계개편의 서막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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