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호가호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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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안자(晏子)는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이름난 정치가. 영공.장공.경공의 세 임금을 섬기며 재상도 지냈다. 자연히 그를 모시는 수하들도 자부심이 대단했던 듯 하다. 안자의 수레를 모는 마부도 그 중 하나였다.

어느 날 안자가 수레를 타고 행차하는 모습을 마부의 아내가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자기 남편은 수레 앞에 거만하게 버티고 앉아 네마리 말에 채찍질하면서 한껏 의기양양해하고 있었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 아내는 이혼을 청했다.

"안자님은 재상이면서도 항상 남에게 공손하여 조금도 교만한 빛이 없다. 그런데 당신은 마부에 지나지 않은데 너무도 오만불손하지 않은가. 그런 사람에게 내 장래를 맡길 수 없으니 나가겠다" 고. 남편은 크게 깨닫고 이후 태도가 겸손해졌다.

안자가 마부의 변한 모습을 보고 까닭을 묻자 마부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안자는 잘못을 즉시 고친 것을 기뻐하며 그의 직급을 올려주도록 추천했다.

'십팔사략(十八史略)' 에 소개된 일화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뻐기는 '호가호위(狐假虎威)' 를 인지상정이라 해야 할까. 안자보다 조금 늦게 태어난 장자(莊子)도 '요즘 세상사람들은 하급관리로라도 임명되면 교만해지고 대부(大夫)가 되면 수레 위에서 춤추며, 정승이 되면 큰아버지 이름까지 함부로 부를 정도로 거만해진다' 고 한탄했다.

먼 옛날 남의 나라 이야기만 할 것도 아니다.

자유당 시절 '귀하신 몸' 소동을 빚은 가짜 이강석 사건은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요즘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 중인 '고바우 반세기전' 에서는 김성환(金星煥)화백이 1958년에 그린 네컷짜리 시사만화 한편이 눈길을 끈다.

경무대 화장실을 청소하는 인부에게 다른 인부들이 넙죽 인사를 올린다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풍자다.

청와대 환경미화원이 정현준(鄭炫埈)한국디지탈라인 사장으로부터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90년대 들어 청와대와 대통령 친인척을 사칭한 사건으로 1백36명이나 구속됐는데, 이번 경우는 사칭이 아니라 정식 직원 케이스니 달리 보탤 말이 없다.

직업의 귀천을 말하는 게 아니라 높든 낮든 자기 직분에 충실하라는 얘기다.

호가호위에서 '호랑이(虎)' 는 자기 상관의 권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국민이라는 점부터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예부터 '민(民)은 호랑이와 같으니 조심하라' 고 했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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