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민주 지지층 잠식 '네이더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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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에선 이번 선거를 '클리프행어' 선거라고 부른다.

수년 전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미국 영화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대선 결과가 영화속 암벽타기 만큼이나 조마조마하게 진행됐다는 뜻이다.

미 언론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 제공자로 레바논 이민자 2세이자 녹색당 후보인 랠프 네이더를 지목한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전국 평균 3%를 득표했다. 이는 그 자신이 기대했던 5%보다 낮은 수치다. 5%를 얻으면 다음 대선 때 연방정부 선거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어 명실상부한 제3당이 될 수 있었으나 실패했다.

그렇지만 네이더는 이번 선거를 좌지우지한 변수가 됐다. 그의 표밭은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하던 진보적 유권자들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이번 선거에서 만일 네이더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고어가 여유있게 당선됐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미 언론은 이런 상황을 가리켜 '네이더 효과' 라고 부르고 있다.

말이 많은 플로리다 선거 상황을 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재검표가 진행되는 8일(현지시간) 현재 민주당 앨 고어는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에게 1천7백여표 차로 뒤지고 있다.

여기서 네이더는 9만6천여표를 얻었다. 네이더가 얻은 표의 10%만 고어에게로 가면 승부는 매우 간단해진다는 말이다.

네이더는 서북부 전통적 민주당 표밭인 워싱턴.오리건주와 중북부 위스콘신 등에서도 위력을 발휘, 고어를 괴롭혔다.

민주당은 선거 막판에 "네이더에게 표를 찍는 건 부시를 찍는 것" 이라고 맹공했다. 유권자들의 사표(死票)방지 심리 때문에 5%까지 치솟았던 그의 득표율은 3%로 가라앉았다. 그래도 민주당엔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네이더는 앞으로 미국 정치판의 지형을 바꿔 놓을지도 모른다. 녹색당은 기존 양당체제의 틈을 비집고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네이더는 선거가 끝난 뒤 "5% 득표는 못했지만 제3당으로 자리잡은 것은 큰 수확" 이라고 기세를 올렸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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