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민주주의의 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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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역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두 후보가 '무승부' 를 기록한 경우가 꼭 한번 있었다.

1800년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토머스 제퍼슨 후보와 아론 버 후보는 똑같이 73표(선거인단 기준)를 획득, 5명의 출마자 가운데 나란히 동률 수위를 기록한다.

헌법에 따라 하원은 두 후보를 놓고 주별 투표를 벌이게 되는데 당시 미 합중국을 구성하고 있던 16개주 가운데 10개주의 지지를 얻어 제퍼슨은 제3대 대통령이 된다.

한표 차로 희비가 엇갈린 경우도 있었다. 남북전쟁 후 남부 반란주에 대한 재건군정(再建軍政)하에서 치러진 1876년 선거에서 공화당의 러더포드 헤이스 후보는 우여곡절 끝에 1백85명의 선거인단을 확보, 민주당의 새뮤얼 틸든 후보를 한표 차로 제치고 19대 대통령이 됐다.

틸든 후보는 유권자 전체 득표수에서 4백28만표로 헤이스 후보(4백3만표)를 앞섰지만 주별로 한표라도 유권자 득표가 많은 당이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독식(獨食)하는 '위너 테이크스 올(Winner takes all)' 방식의 선거제도 때문에 분루를 삼켜야 했다.

유권자 득표에서 이기고 선거에서 진 억울한 경우는 틸든 말고도 두명이 더 있다. 제6대 대통령인 존 퀸시 애덤스(1824년)나 23대 대통령인 벤저민 해리슨(1888년)은 지고도 당선된 행운아였다.

미 대선이 늘 박빙의 대접전이었던 것은 아니다. 제임스 먼로와 애덤스가 맞붙은 1820년 선거는 2백31 대 1이라는 먼로의 일방적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대공황의 한복판에서 제32대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36년 선거에서 '뉴딜' 의 바람을 타고 5백23 대 8의 '랜드슬라이드(압승)' 로 재선에 성공했다.

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서 미 합중국 헌법이 제정된 이래 최초의 재검표 사태까지 몰고 온 2000년 대선은 '세기의 대결' 로 역사에 남게 됐다.

재검표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의 당선이 확정될 경우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는 '승자(勝者)독식' 선거제도의 네번째 희생자가 된다.

'21세기에 19세기를 재현하는 꼴' 이라는 비판과 함께 일부 공정성 시비도 나오고 있지만 고어는 "재검표 결과가 나오면 이를 깨끗이 수용할 것" 이라고 밝히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가였던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미국에 가보고 극찬했던 '민주주의의 꽃' 을 다시 보는 느낌이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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