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영국 박물관내 '사랑방' 재현한 신영훈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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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전세계에서 한옥만한 집이 없습니다. 겨울엔 구들이 있어 따뜻하지요, 여름엔 마루가 있어 시원하지요. 게다가 황토흙에 한지는 전자파를 막아주는 데 효과가 크다고 하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자연친화적인 21세기형 주택이 바로 한옥이지요. "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에 한국유물만을 따로 모아 보여주는 전시실이 지난 8일(현지시간)처음으로 공개됐다.

박물관 건물 북쪽 에드워드 7세관 3층에 1백20평 규모로 마련된 이곳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불상.자기.고서적.민화.병풍 등 2백70여점이 전시돼 있다.

특히 조선시대 선비문화의 산실이었던 사랑방을 그대로 재현한 '한영(韓英)실' 은 이 전시실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10평 규모의 사랑방 설치를 진두지휘한 고건축 전문가 신영훈(申榮勳.65.사진)한옥문화원장은 "그동안 박물관 관계자들이 한국실에 살다시피 하면서 기대 이상의 관심과 호감을 보여준 데 다시 한 번 감사한다" 고 말했다.

申원장은 지난해부터 1년생 소나무와 황토흙.기와.석재 등 각종 자재를 준비해 먼저 국내에서 지어본 뒤 다시 분해해 컨테이너 2대에 담아 지난 7월 이곳으로 가져왔다.

이후 행수.편수.목수 등 전문가 12명과 함께 보름동안 작업한 끝에 사랑채를 완성했다.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의 사랑채였던 노안당(老安堂)의 품격을 담아내려고 노력했지요. 장소 여건상 그대로 다 재현하진 못했고 그 중 방 2간과 마루를 깐 대청 1간을 만들었습니다. 천장이 낮아 마루 밑이 좀 낮아 보이는게 아쉽습니다. "

영국박물관 내에 목조건물이 설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 1992년부터 총 1백20만파운드(약 19억4천만원)를 들여 한국전시실을 추진해온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인호(李仁浩)이사장은 "한국을 방문해 전통가옥을 둘러본 로버트 앤더슨 영국박물관장이 사랑방 설치를 먼저 제안했다" 고 배경을 설명했다.

여기에 사방탁자.문갑 등과 각종 문방구를 정성스럽게 제작한 명장 손덕균씨와 이를 철저하게 고증.배치한 정양모(鄭良謨)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세심한 노력으로 전통 사랑방의 풍취를 제대로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작업 도중 한 교포 노인으로부터 '이제 여기 내 고향이 생겼소' 라는 말을 듣곤 모든 시름이 사라졌다" 는 申원장은 "연간 6백만명이 넘는 영국박물관 관람객들이 한국 전통가옥의 우수성을 직접 보고 느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고 말했다.

런던=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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