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책경쟁 돋보인 미 대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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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마지막까지 민주.공화 양당 후보간의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미국 대통령 선거가 사상 초유의 재검표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물론 선거 결과도 중요하지만 이번 선거가 치러진 과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근 선거환경의 변화에 따라 후보자의 대중적 인기.자질.전력 등 소위 후보자 요인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고어가 선거 기간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도 주로는 후보자 요인, 특히 대중적인 인기에서 부시에게 크게 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과해서 안될 것은 그동안 양당 후보의 선거운동이 세금.사회보장.교육.의료보장 문제 등 주요 쟁점들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유권자들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함으로써 이들의 보다 많은 지지를 끌어내는 데 주력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후보에게 부담이 되는 후보들의 실수와 과거 전력이 들춰지는 일이 몇 차례 있었지만 유권자들의 관심을 오래 끌지 못했고 후보들도 곧 바로 주요 쟁점들과 관련해 유권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자신들의 母?메시지로 되돌아왔다.

처음부터 쟁점경쟁에 초점을 맞추었던 고어뿐 아니라 선거 초반 한때 후보자 요인을 강조하던 부시 역시 앞섰던 지지도에서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뒤지게 되자 자신의 주요 정책입장을 재정비하고 본격적인 쟁점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들의 쟁점경쟁은 그저 추상적인 입장천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정책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즉 자신의 정책대안이 실천에 옮겨졌을 때 가져올 효과가 무엇이며 상대방 후보의 대안과 어떠한 차이를 갖고 있는지 등을 실제사례들을 제시하며 유권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선거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주(州)들에 종반 선거운동이 집중되면서 이러한 쟁점경쟁은 더욱 부각됐다.

그것은 양당이 쟁점경쟁을 통해 경합 주에 거주하는 부동층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 지지를 유도해내려는 의도도 없지는 않지만 그보다 경합 주에 거주하는, 쟁점에 더욱 민감한 고정 지지자들의 투표 참여율을 높이는 데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당 후보의 선거운동도 자신들의 입장을 보다 분명히 밝히고 상대방과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나갔기 때문에 선거일이 임박하면서 더욱 쟁점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여 주었다.

선거 때마다 지역 편가르기와 후보 개인의 신상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서로의 약점을 끈질기게 물고늘어지는 행태에 식상해 있는 우리도 이제는 쟁점으로 승부하는 시대로 변화돼야 한다고 본다.

우리 정당이나 후보도 당면하고 있는 주요 쟁점들에 대해 나름대로 유권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 대안들을 제시하고 유권자들로부터 평가받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정당과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정치에 있어 선거의 기능은 단순히 공직자를 뽑는 데만 있지 않다.

선거가 민주정치 과정의 핵심 기제(機制)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주요 쟁점들에 대해 유권자들의 의견이 수렴되고 보다 많은 유권자들이 지지하는 입장을 취한 후보나 정당이 당선되거나 집권함으로써 그들의 입장이 실제로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천에 옮겨질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부시가 초반 열세를 만회한 것은 앞섰던 인물 선호도 및 네이더 후보 출마로 인한 고어 지지표 분산에 따른 이점 못지 않게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기조 위에서 세금축소 및 사회보장과 교육문제 등에서 유권자에게 보다 많은 선택권을 부여하자는 것으로 요약되는 그의 메시지가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리고 누가 당선되든 당선자가 주장했던 주요 입장들을 대통령 재임 중 정책결정에 반영하려고 노력한 결과에 대해서는 4년 뒤 선거에서 다시 평가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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